<영화가 있는 풍경>

영화 '봄날은 간다'와 '너는 내 운명'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또한 이렇게 독립적인 사람의 생각과 맘이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 못할 일 아니다.언젠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광고 카피가 화제가 됐을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이며 영원한 사랑’의 신화를 쉽게 부정하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에 대한 맹신이 어떤 상처와 불협화음으로 이어질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고 보면 사랑의 시나리오 이외에도 아름다운 이별의 시나리오가 생산돼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봄날을 맞아야 할 이 시점에 영화 ‘봄날은 간다’를 꺼내 봤다.

배반당한 자의 쓰라림과 공허함, 주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반응은 남녀를 구분짓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 상우.그는 운명적인 여인, 은수의 배신을 목격하고는 그녀의 새 차를 열쇠로 그어 버린다.속 시원하다는 의견과 유치하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이다.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말하기엔 그의 상심도 짐작 못할 게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보고 어떤 사람이 침착일변도 일 수 있겠는가.때로 어떤 여남은 삶에 대한 절망으로 치달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그런데 그 태도의 경중을 살필 필요가 있다.이제 이 영화를 벗어나 보자.

영화 ‘너는 내 운명’에는 에이즈에 걸린 은하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있다.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스쿠터로 읍내 한 바퀴만 돌아도 동네 총각들을 설레게 하는 다방 아가씨.어떤 사랑도 변한다고 믿는 이 여성에게 초지일관 운명적인 불변의 사랑을 강조하는 노총각 석중이 있다.그리고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그녀의 전 남편.

사실 영화는 에이즈에 걸린 여성을 사랑한 한 남자의 실화가 바탕이 된 만큼 그 감동도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변심과 배신이 없는 영화이기에 더욱 감동을 줬던 영화다. 그런데 그녀의 전남편을 주목해보자.

그것이 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다면 더욱 할 말이 많아진다. 가부장제의 남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일종의 사적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혹은 그렇게 묘사돼 왔음을 확인케 한다.내 소유물이 스스로 판단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누구인들 이러한 상황을 참겠는가.우리는 흔히 이것을 ‘배신’이라 명명한다.

소유욕 없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영화에서 그리고 드라마에서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소유욕은 욕망을 넘어 여성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부인하겠는가?

사랑의 시나리오가 넘쳐나는 만큼 많은 여남은 애정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다.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 덕분이다.그런데 정작 사랑이 식어버렸을 때, 이미 사랑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 답안도 또 참고할 만한 사례도 드물다. 이별의 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체를 훼손하거나 물건을 훼손하는 충동이 전부다.

그리고 간혹 이러한 배신의 결말은 남성을 향하기 보다 여성쪽으로 기울며 신체적 폭력을 생산한다.한 마디로 ‘나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

영화 ‘너는 내 운명’은 많은 남성들에 의해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 관계망 속에서 폭력으로 얼룩진 상처 많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누구도 타인을 파괴할 권리가 없음’을 역설한다.

이미 배신의 쓴 맛을 알아버린 여성에게 다시 사랑의 힘을 심어준 석중에게 적어도 은하는 소유물이 아니었다.다시 ‘봄날은 간다’로 돌아오자.이혼녀 은수는 총각 상우가 프로포즈를 하자 한 없이 부담스러워한다.사랑만 있으며 철이라고 씹을 것 같은 지고지순한 상우에 비해 은수는 너무 현실적인 것일까?

충돌과 어긋남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쳐야할 필수 과정이다.사랑의 유한함을 알아버린 여자 그리고 집착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남자.사랑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고전주의자들에겐 현실적 은수가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이라는 화두를 던져본다.사랑이라는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사랑=상호의존’ 혹은 ‘사랑=개인 성장의 활력소’? 적어도 ‘사랑하기에 ~해야 한다’는 인식에선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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