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포커스>

윤도현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최근 스크린쿼터의 축소 문제를 둘러 싼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5.6%가 ‘스크린쿼터 유지’를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렇게 국민 대다수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데도 역으로 쿼터축소를 찬성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정부와 대통령은 아주 강력하게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며칠 전 노대통령은 영화계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어린 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해야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연대 만큼 쿼터 축소를 찬성하면서 영화계를 가장 비판하는 입장은 없는 것 같다.

자유주의연대측의 주장에 의하면, 영화계의 축소반대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추악한 집단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집단이익을 위해 우리나라 전체의 국익을 희생시키겠다는 망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축소반대운동이 반미차원의 운동으로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있기에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는 주장이다.

자유주의연대의 ‘나름대로의’ 애국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쿼터축소반대 주장을 영화계, 영화인들만의 집단이기주의 문제로 간단히 치부할 수는 없다. 또 이것을 반미로 무조건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내의 합리적 토론을 저해하는 것이다.

비록 자유무역협정이 현 세계화 시대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라 해도, 모든 것을 교역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한 미국 영화학과 교수의 말처럼 영화는 단순히 돈을 버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이며, 따라서 한 나라의 영화는 해당 사회와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다. 영화 속에는 오락과 유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 속의 삶의 애환, 사회구조에 대한 현실인식과 그 모순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이상사회 등이 영상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과연 한국영화가 아니라도 ‘서편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미국 대통령이 종종 세계의 대통령으로 간주되고, 미국의 문화와 가치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할리우드의 영화가 과연 우리 분단의 아픔과 우리의 정서를 그려낼 수 있을까?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초기 이민시절 그들의 아메리카 정착을 도와주었음에도 할리우드의 영화 속에서는 포장마차를 무조건 공격하는 야만인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지금도 이슬람 사람들은 적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테러리스트로 간주되고 이슬람문화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광신적 문화로 매도된다. 물론 모든 할리우드 영화들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할리우드 영화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더 많은 할리우드 영화만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더 우리의 정신과 정서, 가치관이 할리우드화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스크린축소 문제는 단순히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할 것과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교육, 인간관계, 이성간의 사랑 등은 결코 경제논리로만 풀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이다. 그동안 우리는 오로지 경제적 합리성만을 추구하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중요한 가치들을 외면하거나 잃어버렸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영화의 스크린쿼터는 최소한 현 상태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윤도현 교수는

지난 1999년부터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에 재직하고 있으며 사회학개론,복지국가론,시민사회론 등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현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원회 정책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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