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조영의 / 수필가

정월 대보름 부럼으로 사용하고 남은 땅콩을 거실 탁자에 놓았더니 심심하면 손이 간다.

고소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봉긋한 두 개의 봉오리가 터질 때 소리는 들을수록 기분을 좋게 한다. 어떤 날은 소리 때문에 먹지도 않으면서 수북히 쌓아 놓는 경우도 있다. 빨갛게 얼굴 붉힌 땅콩이 햇볕에 더욱 붉어 보인다.

땅콩은 중국산이다.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직접 농사를 지었다며 약간의 땅콩만 팔고 계시기에 투박한 손만 믿고 사왔다. 겉만 보고는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땅콩이다. 속껍질을 까봐야만 하는데 농사일로 굵어진 손앞에서 화장품 냄새 풍기는 내 손으로 껍질을 까서 확인하고픈 야박한 마음은 없었다.

비닐 봉지에 담아주는 데로 받고, 부르는 만큼의 값을 지불하는 게 맘이 더 편했다. 땅콩이 자랄 때 바람도 불고 비도 내렸을 것이다. 비와 햇살도 쏟아졌으리라. 그런데도 중국산은 맛이 다르다. 흙 냄새가 없다. 흙 냄새까지 닮을 수 없음이 유사품이다.

땅콩을 보면 우리 부부를 보는 듯 하다. 하나의 껍질 안에는 살지만 두 개의 독립된 공간을 갖고 있는 것처럼 함께 살면서 늘 서로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이 첫째이다. 그렇다고 그 중 하나를 밀쳐버릴 수도 없다. 서로 가까이 살면서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

문은 하나다. 껍질이 깨지면 둘 다 밖으로 나와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서로를 밀어내려는 거리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등을 돌린 거리가 멀어질수록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가 차갑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 ‘이혼숙려(熟慮)’ 제도가 시범 실시된다고 한다. 이혼을 신청하는 부부는 일주일 동안 심사숙고하는 기간을 거치게 하는 제도로 쉽게 이혼을 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라고 한다.

기사를 읽으면서 오죽했으면 부부 사이의 일까지 국가에서 개입하려는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반갑기까지 하다. 함께 생활하면서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몇이나 될까.

또 하나는 크기다. 둘 중 하나는 조금 작다. 서열일까, 개성일까, 아니면 양보의 배려일까. 은근히 가부장적 권위를 드러내려는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큰 것은 자신이고 부부는 수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것으로 밀려난 것을 수긍하지 않으려다 보니 보이지 않게 늘 토닥거린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보면 둘 중 하나는 분명 유사품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닮아간다는 것이다.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고 감정 표현이 비슷해지면서 닮는다고들 한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듯 닮아있는 남편을 보면서 함께 한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땅콩을 본다. 남편이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땅콩은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다. 누구 하나가 유사품이면 어떤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고 나를 닮아 가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