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환하다. 영롱한 빛이 나를 반기는 듯 신비롭다. 조릿대는 많이 보았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 처음이다.

괭이꽃, 현호색 봄의 전령사들이 산 곳곳에서 봄소식을 알리고 있다. 이곳은 바람도 느낌이 있다. 마음이 온화해진다. 바깥세상에서는 꽃들이 화려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곳에서는 자기만의 따스함으로 피어나고 있다.

노루귀가 있다. 청아한 귀공자 같다. 그토록 보고 싶던 청노루귀는 오랜 추위를 견디고 고개를 내밀어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귀를 쫑긋 세우고 비탈에 서 있다. 소박하게 마중하는 작은 몸짓이 숲을 깨운다. 발길에 다칠까 조심하며 영접한다.

홍노루귀는 보았지만, 청색과 흰색은 처음 본다. 꼭 숲의 정령이 깃들어 키워낸 듯싶다. 햇살이 닫기 전에는 꽃잎을 다물고 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점심 무렵이라 다행히 꽃잎을 열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꽃이 앙증맞고 예쁘지만, 흰털로 뒤덮인 꽃대도 일품이다. 솜털 뽀송뽀송한 줄기를 보노라면 귀여운 아기 볼이 생각난다.

작고 여린 꽃대에서 어찌 저렇게 고운 꽃을 피워 올릴까. 한 송이 한 송이가 반갑기 그지없다. 일찍 피는 야생화들처럼 키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깔때기 모양으로 말려 나오는 꽃은 3~4월에 핀다.

노루귀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 전체에 흰 털이 나는 게 특징이다.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노루귀란 이름은 꽃이 피고 나면 잎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막 잎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의 모습이 둥그스럽게 말리고 털이 있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특이한 것은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이 꽃받침 잎이란 점이다, 이 꽃받침이 자라는 환경에 따라 흰색, 분홍색, 보라색, 청색 등 여러 색을 띠는데 그 이유가 뛰어난 환경 적응력이란다.

사계절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곳, 물길이 끝나는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 가덕면 내암리 발원지이다. 무심천 발원지답게 물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감을 준다.

하구에서부터 거리가 가장 먼 물줄기를 발원지潑源地라고 한다. 청주시민의 젖줄 무심천 발원지는 현재 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머구미고개)와 가덕면 한계리, 내암리 일대이다. 충북도 지에는 무심천의 발원지를 남일면과 낭성면 경계에 있는 선도산仙到山이라고 적고 있는데, 실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좀 더 조사해 봐야 한다고 한다.

왜 발원지가 한 곳으로 정해지지 않았을까? 의구심을 갖으며 찾은 내암리 일대에 흐르는 벽계수는 물이 맑기로 이름나 있다. 무심천 발원지 푯말을 보며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컸다. 발원지로 가는 길은 작은 개울물이 이어져 있다. 물은 많지 않지만, 유리같이 맑다. 더구나 계곡에서 노란 괭이밥과 꿩의바람꽃이 지천으로 반긴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딘 나무 위 하늘도 파랬다. 원시림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산등성이는 수종 개량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간중간 민둥산이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초입에는 생수 공장이 있어 대형차가 먼지 날리며 드나들고 있었고 종교시설, 전원주택, 농막도 있어서 좀 의외였다. 기대감이 좀 무너졌다.

오랜만에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에 있다. 이 산자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청주를 가로지르는 무심천으로 흐르다니 신기하다. 발원지라고 하면 물이 많을 줄 알았던 기대감은 손을 적셔보는 맑은 물로 만족한다. 산 중간이 발원지이다. 산의 중간에서 물이 흐른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모두 아끼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고고한 자태의 청노루귀. 그 청초한 모습이 눈에 어린다. 작고 여리고 솜털 뽀송뽀송한 미소년 같지만, 발원지 물소리를 생장의 소리 삶아 오늘도 제 몫을 다하고 있을 테다.

발원지 보호는 물론 서식 환경을 유지하여 노루귀 개체수가 늘어나기를……. 새봄에도 나를 매료시켰던 노루귀를 만나고 싶다. 청보라 꽃잎의 강렬함, 하얀 꽃술 속 노란빛, 꽃대에 곱게 돋은 솜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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