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아침에 굴비를 구웠다. 굴비를 구울 때 나는 냄새가 삽시간에 진동을 했고, 그 냄새가 온 집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굴비를 구울 때 초기에 느껴졌던 냄새의 강도가 후각에 적응되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가 옅어졌다. 굴비를 굽는 시간은 잠시잠깐이었는데 굴비를 구울 때 풍겼던 냄새는 집안에 오랫동안 남았다. 모든 생선이 그렇듯 굴비도 맛있긴 한데 구울 때 나는 냄새로 식단에서 기피되거나 홀대를 당하기도 한다. 맛있는 굴비를 먹기 위해서는 굴비를 구울 때 나는 냄새를 피할 수가 없고 그 냄새를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식사를 마친 뒤 굴비를 구울 때 집안에 배었던 냄새를 부리나케 제거했다. 집안의 온 창문을 활짝 열었고, 환풍기를 튼 후 딸이 선물해준 향초까지 피웠다. 설거지를 할 때 굴비를 구웠던 프라이팬을 맨 먼저 닦았고, 굴비를 먹고 난 뒤 남은 머리와 뼈를 아파트 단지에 비치된 음식물 찌꺼기 수거 통에 잽싸게 갖다버렸다. 굴비를 구울 때 풍겼던 냄새의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고 나자 냄새가 확연히 줄어들어 견딜만했다.

음식을 조리할 때면 냄새가 풍기고 그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듯이,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식의 무의식속에 차곡차곡 쌓여 자식의 삶을 지배한다. 심리학자들은 부모가 지닌 기질과 성향, 부모가 삶을 대하고 살아가는 방식, 부모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관점, 부모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패턴까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고 말한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뜻대로 쥐락펴락 하기 위해 통제하거나 억압하고 조종하기 위해 이중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식을 야금야금 세뇌시킨다. 자식은 부모가 발현하는 심리적인 역동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체득된 습관에 종속되어 꼼짝달싹 못한 채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역기능적인 역동에 휩싸여 살아간다. 부모는 자식에게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의 못마땅한 모습조차도 거부하지 못하고 체득되거나 벗어나지 못하고 닮아간다.

교직생활을 하던 M은 퇴직을 6개월 앞두고 수령하게 될 퇴직금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출을 받아 외제차를 구입했다고 했다. 대개 퇴직 후 자녀들 혼사에 들어갈 비용과 노후의 생활비를 감안하여 목돈을 지출할 때 심사숙고하기 마련인데 자신은 평소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현재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려는 소비성향이 강해서인지 외제차를 구입하는데 별 망설임이 없었단다. M은 구입한 외제차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고, 주차할 때 흠집이라도 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였다. M에게서 자기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뽐내고 싶어 하는 허세까지 느껴졌다.

M은 간호사인 딸에게 자신이 받은 퇴직금에서 5천만 원을 줬다고 했다. 딸은 받은 돈을 결혼 자금에 보태거나 요긴하게 쓰기 보다는 돈을 받자마자 2년 정도 타고 다니던 소형차를 아빠에게 주고 중형차를 구입했다고 한다. M이 딸에게 중형차를 사고 싶었던 이유를 묻자 "직장 동료 중 후배가 자기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애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중형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겠느냐"고 답했단다. M은 딸이 퇴직금에서 준 돈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소비성향과 허세를 딸이 고스란히 닮았고, 딸에게 대물림을 시켜준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굴비를 구울 때 나는 냄새는 일시적이고 잠깐이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대물림되는 병리적인 습성과 역기능적인 관계의 패턴은 평생에 걸쳐 자식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냄새의 원인을 알아차리기는 쉽지만 자식이 부모에게서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대물림되는 병리 현상과 역기능적인 역동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 자식 간에 좋지 않은 습성과 역기능적인 관계의 패턴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폐단을 끊겠다고 다부지게 다짐을 하고 부단히 노력을 하게 되면 대물림의 기세는 수그러진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