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동그란 얼굴에 작은 콧구멍을 가진 파마머리 아줌마와 그녀 가족의 일상을 담은 작품들이 그득하다. 예술은 어쩐지 고고하고 어려워야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무너진다. 수수하고 담백한 삶의 순간들이 평화롭게 담겨있다. 나보다 열두 살쯤 적은 띠 동갑 나이의, 스페인에서 태어난 여인이 30여 년간 이루어 낸 예술작품들을 둘러본다.

그녀는 생활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 점에서 내 문학관과 일치한다. 30여 년간 세계를 도는 전시회와 협업으로 널리 알려진 대중예술가다. 대전 전시도 다섯 달이 넘고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작품 제목에 가족, 축제, 특별한 날, 인생, 산책 같은 낱말들이 보인다.

내 학창시절에는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또래들은 친구들이 중시하는 분야 공부를 조금은 등한시했었다. 그들은 으레 특별한 아이들로 분류되고 주요과목을 잘못해도 그러려니 여겼었다. 평가에서도 예술분야는 주요과목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생활의 긴장을 풀어주는 여타분야 정도로 다루어졌다. 그런 인식은 내 나이 오십 전후가 되도록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삶을 반 넘어 살고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를 앞서 고민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여주는 이들이 예술가들이다. 세월이 가고 인류가 순수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문학 음악 미술에 이르는 예술가들 아닌가? 그 예술이 몇 사람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선택받은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던 지나간 오랜 세월이 있었다.

아직도 삶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 서민들의 일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게다. 서민들이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술을 접하는 계층이 점점 넓어져 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예술인들이 어찌 모를까? 예술을 즐기는 이들을 늘이기 위해 애쓰는 그들이 있어 팝아트와 그래피티 같은 분야가 예술로 인정받는 것일 게다. 예술은 어렵고 삶의 일상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평범한 일상이 중요하고 그것이 예술이라는 걸 그들은 보여주려 한다.

그림으로 나타난 일상이 밝고 따뜻하다. 삶이 어찌 밝기만 할까. 그렇다고 굳이 어두운 일상을 왜 그려내지 않았느냐고 할 수는 없다. 작가의 예술관이자 철학이요, 지극히 개인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야 마음이 후련하고 창작의 뿌듯함을 느낀다. 대중들도 그 런 작품에서 작가의 절실함과 진솔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일별하고 밖으로 나왔다. 넓은 녹지에 수목원이 있고 유명한 화가의 미술관이 있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하고 늘어선 푸른 나무들에 더하여 산들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있으니 상쾌함 속에 나른함이 밀려온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얼굴 붉히고 복닥거리고만 살 것이 아니라 때론 이런 여유와 고요 속에 묻히는 일상을 누리고 싶다.

조금 전에 보았던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 그림이 떠오른다. 그런 광경도 흔한 것이 아니다. 무에 그리 바쁜지 식탁에 앉는 시간이 서로 어긋나 일주일에 한두 번 그런 기회가 있으려나 싶다. 그것마저 자녀들이 가정을 이뤄 떠나가면 일 년에 서너 번으로 바뀔 것이다.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순간이 지금이다. 요즘 마음에 담고 있는 하루의 계획들이 번번이 어긋난다. 조바심이 이는 마음을 일상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가라앉힌다.

올 후반기에 할 일들을 꼽아본다. 벅차다. 욕심이 그 안에 가득하다. 일상은 욕심을 경계하라 하고 계획한 목표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우치려하고, 의욕은 내게 높은 곳을 가리키며 오르라 재촉한다.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것 같은 내 삶이 이러하면 열심히 사는 이들은 어떠할까?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내 삶이 내리막을 향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정상을 마음에 품고 조금씩 오르다 어느 한 지점에서 그대로 멈추고 싶다. 새처럼 빠르게 하늘로 차고 오르다 어느 순간 삶이 끝나면 좋겠다. 그 순간까지 편안하고 부드러운 일상을 표현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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