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손님으로 갔는데 공간이 익숙하고 편안하면 단골집이다. 인테리어 변화를 금방 알아보면 단골집이다. 자연스럽게 빈자리 찾아가면 단골집이다. 주인이 먼저 인사하고 간단한 안부까지 물으면 단골집이다. 옆자리 손님과 서슴없이 이야기 나누는 곳이면 단골집이다. 주인을 통해 내 이웃의 소식을 들으면 단골집이다. 식성을 알아서 주문하지 않아도 음식이 나오면 단골집이고, 낯빛을 알아채면 단골집이다. 그리고 취향과 성격을 알면 단골집이다.

나는 성격이 외골수라서 마음에 들면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의 단골이 있는가 하면 커피숍은 몇 군데 단골집이 있다. 처음 단골이 된 커피숍은 커피 맛이 으뜸이다. 주인이 커피 내리는 모습은 禪에 이른 匠人의 모습과 같다. 한 잔의 맛을 내기 위해 집중하는 정성스런 손길은 숨을 멎게 하고 내가 귀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마시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커피만 있다. 그래서 좋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삶과 일에 철학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20여 년 살았던 집 근처에는 문구점이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상가가 생겼고 그곳에 터를 잡은 주인은 드나드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운다. 형제, 자매, 남매 사이까지 기억하는 주인은 문구점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이름을 부르면서 먼저 인사한다. 근처에 중학교도 있고 문구점은 한 곳이라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문구점에서 흔하게 보는 오락기라던가 뽑기 같은 사행성 물건이 없어도 항상 북적이는 이유는 친절하게 이름을 부르며 맞아주는 주인의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은 물건을 사면서 이것저것 요구해도 늘 변함없는 주인이 좋아 살 것이 없어도 찾아가는 문구점은, 이젠 기업의 대형화와 인터넷 판매, 학교에서도 문구의 준비물이 없다 보니 활기차던 공간이 한가롭다. 항상 새롭고 흥미롭던 진열장을 바라보던 내 시선도 느려졌다. 사람도 환경도 생활도 세월 따라 변했지만, 처음부터 현재까지 문구점을 찾아오는 아이들 이름을 알고 있는 주인의 기억은 일을 즐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파트도 오래되어 젊은이가 없고 아이들도 점점 줄어가지만 한곳에서 변함없는 마음으로 지키는 신의가 있어 문구점 공간은 항상 빛난다.

또 하나 단골집은 미장원이다. 대부분 오랜 단골이라 손님들은 노년에 가깝다. 그래서 그곳은 예약이 되지 않는다. 편안한 시간에 내 집처럼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영업시간은 있으나 지키지 않고,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순서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드나드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이해되었다. 주인보다 손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서로 격의 없이 인사 나누며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가져오는 곳, 다른 손님의 안부를 묻는 것은 단골집에서만 보는 정겨움이다.

미장원은 새로운 소식과 소문의 진원지였던 옛날 빨래터와 흡사하다. 여자들만의 성지인 그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잠깐 머물다 가지만 펼쳐지는 소재는 풍성하다. 쟁점이 되는 사건부터 연예인, 드라마, 혹은 이웃, 내 집 일까지 흥미롭고 다채롭다. 또 연륜과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와 살림 비법은 인터넷 검색에도 없는 유익한 정보를 얻는다. 웃고 흥분하고 분노하고 비판하는 그곳에는 손님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젊은 주인이 있다. 변함없는 태도로 공감하고 친절하며 웃어주는 주인이 있어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견디고 이해한다. 그곳에 가면 나는 젊은이다. 그래서 좋다. 젊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 속에 어떤 말이든 들어주며 지지해 주는 주인이 있어 멀어도 찾는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단골집은 믿음이 있다. 소박하지만 격이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실하며 일을 즐긴다. 그리고 손님의 말을 존중하며 공감한다. 단골이 된 이유이기도 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단골집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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