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현호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 관장

한 명의 아이가 죽었다. 아니 수많은 아이가 죽었다.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불러줄 이름조차 없었다. 우리 곁을 떠난 출생 미신고 아동들의 이야기다.

최근 출생 미신고 아동들이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돌봄과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하고 이름도 없이 떠났다. 그건 바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부여해왔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채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출생통보제가 도입되어 다행이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영유아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확인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아동보호 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점은 출생통보제 도입이 새로운 대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동보호 단체에서는 오래전부터 출생통보제 도입을 요청해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수차례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야만,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만 변하는 이런 현실이 개탄스럽다.

지금도 출생통보제는 도입되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출생통보제 도입으로 인해 산모의 병원 외 출산이 늘어날 수 있고, 산모와 아동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어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보호출산제 도입에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아동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를 지니며, 부모가 누군지 알고,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를 지닌다.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더라도 위기 임신의 출산 및 양육지원 대책 강화 등 가능한 부모가 아동을 직접 키울 수 있도록 우선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아동이 성년이 되면 최소한 친생부모를 알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아울러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도 마련 또한 필요하다. 이제는 때늦은 뒷수습이 아닌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산부 및 영유아 대상 보건 방문서비스, 부모교육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

정현호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 관장
정현호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 관장

뒤늦은 국회의 땜질식 입법과 정부의 임시적 대책이 이제는 그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세상의 변화는 관심과 실천에서 시작된다. 아동학대에 관한 관심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부와 국회에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지속되길 바란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 아동학대 신고는 누구든지 언제나 112로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실천해야만 한다.

키워드

#기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