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갈치조림이 참 맛있다.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싱싱한 놈을 보내준 지인에게 고마워하며 허겁지겁 젓가락을 놀린다. 아뿔싸. 갑자기 이물감이 느껴진다. 죽은 가시의 저항이다. 안절부절못하며 뜨거운 물을 마셔보고 김치를 씹지 않고 삼켜보았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대로 하면 가시가 더 깊이 박힐 수 있다는 금기사항이 아래에 있다. 얼른 멈추고 시계를 보니 이비인후과가 문 닫을 시간이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마음을 비우고 살 나이에 식탐을 들킨 것 같아 여간 민망하지 않다.

'자고 나면 괜찮겠지. 내일은 다른 태양이 떠오를 테니.'긍정적인 생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취침 중에도 이물감이 있었는데 새벽에 눈을 뜨니 신기하게 아무렇지도 않다. 역시 사람의 몸 안에는 자정 능력이 있음에 이내 감사한 마음이 된다. 세상은 초록의 온도로 나를 감싸 안고 태양이 더 찬란함에 쾌재를 불렀다.

어린 왕자가 묻는다. "가시가 있는 장미꽃도 양이 먹어?" 그렇다는 말에 "가시는 뭣에 쓰는 거지? "라고 되묻는다. 가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대답에

"거짓말 마! 꽃들은 연약해. 그리고 순진해. 꽃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가시가 있으니, 자기들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어린 왕자의 이 말에 매료돼서 재직 시 한때 가시 같은 보호색을 쓰고 다녔다. 여자이고 체격도 크지 않으니, 상대방이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었다.

바닷속 문어는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변화무쌍해서 변신술의 귀재라고 한다. 꼭 요즈음의 정치인들 같다. 그렇게도 못하면서 흉내를 냈으니 젊은 날의 객기였는지….

흔히 잔가시라고 부르는 생선 살에 박혀있는 가시는 물고기의 몸을 떠받쳐 주는 중요한 뼈대 보조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선 먹을 때 목에 걸리는 가시는 십중팔구 이 가시라고 말할 정도로 잘 걸리는 가시이다. 먹이가 된 것만도 억울한데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이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 백해무익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배도 물에서 뜨려면 밸러스트 탱크가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선박의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화물이나 승객 등의 무게로 배가 기울지 않도록 한다. 선박평형수를 주입하거나 배출해 균형을 잡아준다. 선박의 안전 운항에 중요한 역할이다.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가시는 그런 역할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처한 입장과 보는 각도에 따라 가시의 역할은 극과 극이 된다.

며칠 전에 지인이 어느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글은 잘 썼는데 그로 인해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 작품에 거론된 그날의 사고가 생생히 떠 올라 괴로웠단다. 다음부터는 글 쓸 때 피해자 생각도 하면서 써야겠다고 부언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어떻게 글을 쓰겠냐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쓰는 행위가 누구에게 가시가 되어 찌르지는 않을지에 생각이 미친다. 글뿐만 아니라 나의 말이나 태도, 행동이 가시가 되어 상대방을 찌르지는 않을까 싶으니 그새 도식과 강박이 된 것인지….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알고도 죄를 짓고 모르고도 죄를 짓는데,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더 크다고 불가에서는 말한다. 그것은 모르고 짓는 죄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몰라 참회할 수 없어서이다. 죄가 눈덩이처럼 굴러갈수록 자꾸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경전에는 모르고 지은 죄보다 알고 짓는 죄가 더 크다고 한다. 가르침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리 다르니, 함부로 죄짓지 말고 살라는 깊은 의미의 깨우침을 일러줌이다.

말끔히 사라진 가시가 초록하듯 자꾸만 미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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