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자신의 극적인 삶을 책으로 쓴 분의 "북 토크"에 갔다. 마흔에 길거리에서 뇌졸중을 맞아 응급실로 실려가 보름 만에 의식을 찾는다. 몸 한쪽이 마비되어 말도 못하고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한순간 무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 불혹에 극도의 자기혼란이 시작된 셈이다.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걷기에 도전한다. 지금까지도 살기 위한 건강유지 방법으로 걷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돌 지나면 자연스레 하는 일이 훈련을 해야 할 수 있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스무 해 하고도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온전히 걷는 모습이 아니다. 마비는 풀리지 않아 불편해 보이지만 못하는 일은 없는 듯하다.

걷기 다음은 운전이었다. 운전은 다리의 기능을 확장하는 현대인의 기초생활능력이다. 하지만 마비된 몸으로 운전은 쉽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이루어 냈다. 운전으로 생활반경이 집과 그 주변을 벗어났다. 물리적 거리를 극복해낸 것이다.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것이 언어였다. 혀가 풀리지 않아 어눌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누군가 껌을 씹어보라는 조언을 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껌 씹기가 놀랍게도 혀를 풀어주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껌 씹기는 혀와 뇌에 영향을 주어 이제 타인과의 언어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칠보공예를 배웠다. 그 곳에서 칠보와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을 발견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아내 될 이를 만난 것이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2급 장애인이지만 보조교사로 참여했다가 서로 만났다. 사고 후 가장 큰 삶의 의미와 동력을 얻은 셈이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귀한 만남 중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6년 NGO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멘토는 멘티의 삶을 바꾼다. 천천히 땅에 물이 스미듯 삶이 바뀌고, 어느 순간 그분이 자신의 멘토임을 알게 된다. "긍정적 포기"라는 말을 그분에게 들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의 포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멘토의 가르침을 따른다. 스승과 함께 정기적인 걷기 과정을 "길 위의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5년 넘게 하고 있다. 만병의 치유책으로 인간에게 주신 것이 걷기가 아닐까? 누워있어 걷지 않아, 진짜 환자가 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어나 걸으면 몸이 알아서 항상성을 회복할 것 같다. 몸과 마음에 문제가 있는 누구에게나, 심신의 질병을 예방하려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것이 걷기인데 혼자는 잘 안되니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는 기부를 강조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자기계발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습관을 만들면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을 알아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 수백일 정진하고 있다. 멘토와 함께 강연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며 장애 없는 이들이 못하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사고와 그 후 극복의 나날들, 아내를 만나고 인생의 은인을 만나 이루어낸 변화된 삶을 담담히 그려낸 책으로 이제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인생이 뜻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한순간 만나는 사건사고들, 하지만 그 여파는 평생 지속된다. 그분은 아는지 모르지만 내겐 장애를 넘어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 개인의 인생고백을 들은 느낌이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강한 빛이 비취는 곳은 눈부시게 밝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게다. 어둠은 밝음의 정도에 비례하리라. 큰 고통의 맞은편에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가 살아온 정상인으로서의 사십년,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어 살아온 이십육 년, 어느 쪽 무게가 더 무거울까? 내가 살아온 세월이 그와 비슷하지만 가정과 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에서 그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삶에 강한 자극을 받는 만남이 있다. 긍정적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선한 방향으로 바꾼다. 굴곡진 위대한 인생을 엿보았으니 또 한동안 힘차게 살아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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