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병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인간은 삶이 존재하는 한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연인데 인연은 참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그렇지 않은 인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생활할 때 우리의 나날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새롭게 변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연이란 반복하는 여행길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고귀한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의 일이다.

유성종축장에서 근무할 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친구 사촌 매형이 사무실에 찾아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참한 색시하나 있는데 만나 보겠느냐."고 하길래 나도 그냥 이삿 말로 "좋지요."라고 나도 모르게 얼른 대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친구 사촌 매형이 둥근 얼굴에 균형 잡힌 눈매, 길고 아름다운 목선을 소유한 아가씨의 명함판 사진을 가지고 와서 마음에 들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사진을 받아든 나는 빼어난 미모에다가 키도 휜칠하고 말도 예쁘게 잘한다는데 호감이 가서 몇일 후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약속 날이 되어 대전역 앞 모 다방에서 첫선이라는 것을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용모가 정갈하고 구김살 없이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첫인상이었다.

우리는 서로 첫 인연에 맘이 들었던지 대전 만수원으로 이동하여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뒷 서거니 앞서거니 걷고 또 걸었다.

그녀는 참으로 아름답고, 총명하고, 순결하고 어디 한구석 부족한 곳이 없는 완전한 여자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 좋게 만나고, 기분 좋게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눈빛이 살아 있었기에 인연이 되었다. 처음 눈빛이 나를 사랑하겠노라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도 그를 사랑을 하기로 했다. 사랑과 존경과 인격이 그대로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평생을 같이해도 괜찮을 사람이라고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몇일 후 친구 사촌 매형을 통하여 연락이 왔는데 갑작히 앞으로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불분명하여 이유라도 알아보자고 친구 아버님을 대동하여 알아보았고, 그런저런 사유가 있었지만 세월은 흘러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내 생에 가장 기쁨과 희망을 주는 그런 값진 인연이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 날 대전 대흥동에서 약혼식을 거행하였다. 약혼식이 끝나고 유성농장에 다녀왔고, 다음 해 1월에는 약혼자와 설레는 마음으로 서산행 고속직행버스에 몸을 싣고 고향 집에 다녀 오기도 했다.

온 천지는 지난날의 모든 어려움을 포근히 감싸주려는 듯 함박눈이 내렸다.

버스는 온통 하얗게 펼쳐진 도로 위를 거북이걸음으로 달렸고, 지나치는 바깥 풍경들의 모습에서 많은 환희를 느꼈다.

다시는 돌아 올수 없는 것이기에 지나치는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한 것 같았다. 그러나 가는 것을 무조건 서글픈 눈빛으로만 지켜볼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기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행복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가장 평범한데 있는 것이며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라고 속삭여주는 그녀의 귓속말이 더욱 즐거운 고향 여행을 다녀올 수가 있었다. 참으로 인상 깊었던 고향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해 봄 춘분 날 우리는 대전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처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살다 보면 수많은 만남이 우여곡절 속에 이루어지게 된다.

유비가 제갈공명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행하였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이야기는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 번이 아니라 수십번이라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삼고초려"가 고사성어가 된 이유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 찾아갔다는 점이 아니라 그러한 만남을 위해서 한평생 뜻을 같이하고 죽을 때까지 동거동락(同居同樂)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갖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우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만남을 항상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피천득」 시인은 인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사물이 인연으로 엮어 있다." 이렇게 우리는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인연이란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인생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을 버티는 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어떤 『절세가인(絶世佳人)』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슴으로 오늘 하루 소중한 인연을 충실히 맺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