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참으로 인연도 좋은 인연이다. 초,중,고시절에는 어김없이 일년에 두 번씩은 그곳을 가야했으니 말이다. 왜냐구요? 학교다닐 때 봄소풍과 가을 소풍은 맡아놓고 의림지 솔밭공원이였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아도 그곳만큼 좋은 데 없다. 솔향기가 가득하고 소나무로 인해 자연적인 그늘이 있고 평탄하고 넓어 안전하고 유서깊은 곳이 소풍지로서는 제격이다. 어디인들 소나무가 없겠느냐마는 여기의 소나무는 연륜이 있는 어른처럼 노송들이다. 모양도 제 각각이다. 곧은 나무도 있는 가하면 등 굽어진 노송들도 꽤 많다. 학창시절의 인연이 길기도 하지 지금도 운동삼아 걸어갈때면 그곳을 찾아 소나무를 벗 삼아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며칠전 오후에도 그곳을 찾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려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찾아왔다. 어떤 가족은 작은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간식을 나누는 다정한 모습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우리 때는 이처럼 가족이 함께 와 이야기 한다는 그 자체를 생각지도 못했다. 60년대와 70년대 초반이였으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중,고등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고 감사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요즘에는 거의 모든 길이 도로포장이 되어 흙길을 걸으며 산책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로 예쁘게 디자인된 데크길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청순한 솔향기를 맡으면서 주위 길옆에서 살며시 반겨주는 솔잎 한잎 한잎의 귀여운 모습은 보기만 해도 고맙기까지 하여 가다가 멈춰 서서 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결코 나 여기 있다고 세상사람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노송은 말없는 나의 스승이다. 거기에서 겸손함을, 베품을, 변함없음을 배운다.

요즘의 솔밭공원은 시민공원으로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메마른 정서를 감성있는 여유로움을 갖기위해 작은 도랑을 마련하여 아이들이 물장구도 치고 어르신네들도 발을 당구시면 흐르는 물소리에 취허고 작은 돌과 물과의 소근거림에 취하니 이만한 휴식공간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걷다가 쉴 겸 긴 의자에 앉으면 무언가 쓰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곤 한다. 그래 나는 하는 하는 수없이 메모장을 꺼네어 몇줄의 글을 적어본다.

'휴식공간'이라는 제하로 이렇게 적어본다. 찌는 듯 무더위가/온몸을 짓누른다// 나그네 쉼을 찾아 / 솔밭을 거닐때면//노송의 베푼은혜가/ 한량없이 고맙네//

이런마음이 어찌 나뿐이리요? 여기에 함께 하는 분들 아니 이곳을 찾아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우리네 삶은 모두가 분주하다. 그래서 인사도 우리때에는 누구를 만나도 아침, 점심, 저녁때에 진지 잡수셨어요? 라고 하는 말이 인사 첫 화두는데 지금은 얼마나 바쁘셔요? 라고 인사의 화두도 바뀌었다. 이러고 보면 짧은 인사에도 그 시대상이 여실히 담겨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바쁜삶 속에도 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중에 하나가 휴식이다. 휴식은 내일을 충전하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휴식을 어디에서 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즉 휴식공간이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날때에도 장소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보게 된다. 이만큼 주변환경은 우리의 삶에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솔밭공원을 거닐면서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 풀한 포기 한포기, 크고 작은 여러모양의 돌들,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흙길, 쉬어갈 수 있는 긴의자 등이 너무나 소중하게 와 닿는다. 불현 듯 지난날의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새삼 뇌리를 스치곤 한다. 왠지 머리에 서리가 내린 지금에는 휴식공간의 그 의미와 무게감이 전과 다르게 다가옴을 막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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