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정기점진을 위해 가끔 병원을 드나들면서 아득히 잊고 있던 서울을 다시 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여름방학 여행이 서울 언니네였다. 형부가 창경원 등 이곳저곳 구경을 시켜 주었는데 그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꽃무늬가 있는 지지미 원피스였다. 방학에 서울 구경 가서 새 옷 얻어 입고 온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시절, 꿈의 도시였던 그곳이 어느 날 내게 다가왔다.

첫발을 들였다. 낯설고 두렵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도 삐죽이 고개를 든다. 1년여 취업 준비를 하여 처음 일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였다. 그 당시는 서울시경이라 불렀다. 전국 팔도의 색깔이 고루 배어 있는 곳, 입사 동기생 18명도 각기 제 무늬를 지녔다. 홀로서기다. 넓고 미로 같은 서울살이의 시작이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의 얼굴은 다양하다. 거대한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간다. 회색빛 빌딩 숲에서 느끼는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이면에 묘한 결속력이 있다. 자연의 숲에서 느끼던 생명력과는 또 다른 활력이 느껴진다. 온전한 개체로서 자립하기 위한 경쟁력일지도 모른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 골목부터 뛰는 사람이 보인다. 내 발걸음도 빨라진다. 아니, 나도 뛴다. 남이 뛰니 그냥 뛰는 거다. 만원 버스에 다리 한 짝을 올리면 출발과 동시 버스 안내양은 배치기로 승객을 밀어 넣고,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출렁 한번 흔들면 버스 문이 닫힌다. 뛰다시피 들어선 사무실 안에서는 서류와 한판 대결이 벌어진다. 일에 휘둘리지 않고 부리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등수로 가치가 평가되던 학창 시절에도 느끼지 못한 경쟁의식이 슬그머니 인다. 나 자신을 깨어나게 하는 활력이고 흥분이다. 차차 일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 부마 민주항쟁으로부터 박 대통령 서거 등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부 정권이 들어선다. 데모, 시위, 온 나라가 최루탄 화염병의 회오리에 싸인다. 전쟁이 따로 없다. 일련의 과정을 최일선에서 맞으며 내 20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격정의 시기와 함께 했다.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왔던가. 중학교 입시 경쟁도 빗겨 갔다. 고등학교 역시 지역 학교에 들어가다 보니 크게 경쟁하지 않았고, 누구를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도 없었다. 낙오라는 말 자체를 모르고 유연자적 하다가 대학입시에서 벽에 부딪혔다. 성인으로 가는 문지방에 걸려 고꾸라지고 말았다. 대학도 거저 가는 줄 알았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듯 생애 첫 실패는 내게 약이 되었다. 

서울은 마음먹고 부지런 떨면 직장 생활하며 공부할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이다. 조금 늦었지만 대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주변 분위기가 한몫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만큼, 야물어지지 않으면 살아나기 어려운 여건은 나를 철들게 했고, 조금씩 성숙시켰다. 냉철한 사회, 서울은 치열한 삶의 도시로 비정하고 냉혹해 보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곳이었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과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게다. 

서울의 얼굴은 우리나라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모습이 지금은 어떠한가. 비대해진 몸뚱이를 뒤뚱거리며 점점 기형이 되어가지 않는가. 너무 오랜 기간 이것저것 독식해 온 결과 서울은 배불뚝이요. 타 시도는 말라비틀어질 지경이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이제 각 시도의 특성에 맞게 나눌 것은 서로 나누어 상생 발전해 나가야 할 때다. 지역은 그 자체로서 젊은이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시도가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도시로 도톰히 살이 오를 때, 서울 또한 날렵하고 세련된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한때 희망이었던 그 시절, 서울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균형 잡힌 우리나라 한반도의 몸매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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