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어느 날 문득 돌아다보니 지나온 모든 게 다 아픔이네요, 날 위해 모든 걸 다 버려야 하는 데 아직도 내 마음 둘 곳을 몰라요."

요즘 이 노래에 푹 빠졌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힘든 일이 많았다는 것을 가사로 녹여낸 곡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아픔이 많다. 그런 마음을 위로해 주는 노래라서 틈나는 대로 듣다 보면 나의 감성을 건들기에 충분하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비바람 부는 날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가슴에 품었을까. 겹겹이 쌓인 각기 다른 시간 속 사건들. 그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나 괜찮다는 듯,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정신분석학자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쓰고 자신의 역할을 반영하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이루어간다고 한다. 가면 속에 슬픔을 감추고 산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지금, 그땐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조그만 자극에도 반응한다. 지금이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받아칠 말도, 그땐 너무 힘든 상황이라서 서럽고 화나게 들렸던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남편이 가고 난 후 시댁과 연을 끊는 이들을 이해 못 했었다. 5년여 병시중할 때는 너밖에 없다가, 가고 나니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극한 상황은 뇌경색으로 왔다. 그러면서 버릴 건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나 불안의 위협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고 불안을 감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큰 슬픔 앞에 가장 쉬운 남 탓이라는 방어 기제를 쓴다. 사별 과정과 비통의 감정은 매우 힘들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중간에서 급격하게 일탈한다거나, 타인에게 의지한다던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을 원치 않으며 그것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따라서 인간은 갈등에서 비롯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아들의 죽음을 며느리한테 화를 푼 건 아니었을까.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에 길 하나를 내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길이다. 사시사철 꽃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터덜터덜 돌 짝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나는 꽃길을 걷는 사람이 될 것이고, 시련이 오면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고, 고통이 있어도 마음에 사랑과 용서를 쌓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니, 내 몸 하나 간수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하루하루 별 일없이 지나가면 다행이었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아니 신나게 살고 싶다. 김경일 교수는 '균형 잡힌 삶이 역량이 되는 시대'에서 행복을 저축해 놓으면 힘든 일이 있을 때 견딜 수 있다고 한다.

기쁜 일을 기록하고 저축해 놓으면 힘들 때 기록된 행복을, 사소한 행복을 꺼내 볼 수 있는 일들이 존재한다. 시련은 자주 오기 때문에 행복을 자주 느껴야 한다. 1년에 백 점짜리 행복보다 10점짜리 행복을 열 번 느끼는 것이 더 좋단다.

병시중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결국은 꾸역꾸역 일했다. 기록하라는 말은 그런 일들 전에 살짝 행복한 일이 있어서 견디었지, 싶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이, 날 위해 이제는 다 비워야 하는데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날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비워야 한다고 노래한다. 누구나 삶이 그저 행복할 수는 없어서 가끔은 내면의 갈등과 부딪히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내면의 생각을 정리한다. 시련이 지나간 뒤 고통의 시간을 감사로 되새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가면 뒤에는 나약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숨어있다. 아들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아니면 삶을 이어가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이해하자고 다독여본다. 떨어지는 비에도 꽃은 피어나듯이, 어느 날 문득, 모든 걸 다 비우고 나의 내면과 적당히 타협하며 승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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