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문학] 허건식 용인대 대학원 객원교수·체육학박사

1908년 1월 15일 베이든 파월은 '소년들을 위한 스카우트 운동(Scouting for Boys, 이하 '스카우팅')을 발간후 1년이 되기도 전에 6만부가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후 70여년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상업적 성공에 이어 '스카우트(The Scout)' 잡지는 매주 11만부가 판매되었다.

이 책의 인기는 소년들을 스카우팅(스카우트 운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은 소년들은 보이스카우트 성립 원리와 개방적 성격에 쉽게 매료되었고, 누구나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다른 유소년단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단체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소년 5명을 모아 스스로 패트롤(patrol)을 만듦으로써 보이스카우트가 될 수 있었다.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조직역시 이 책을 읽고 자발적으로 참가한 소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에 이루어졌다. 1908년 9월에 스카우트 사무소가 설립되었고, 1909년 5월에 스카우트 본부가 설립되었다. 이 본부에서는 보이스카우트가 된 소년들에게 유니폼을 보내주는 역할부터 지방조직 설립, 가입자 정보의 관리 등을 담당했다. 이처럼 보이스카우트는 정부나 기업과 같은 어떤 조직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난 소년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성립된 유소년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스카우트의 내면에 제국적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제국을 수호할 수 있는 군인을 만들고자 했던 파월의 숨은 의지가 들어 있었다. 보이스카우트 운동에 참여한 소년들은 스카우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군인 정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것으로, 소년 병사의 직접적인 양성이 아니라 미래의 유능한 군인이 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평화스카우트란 개념을 통해 미래 유능한 군인이 되기 위한 일상에서의 연습을 강조한 것이다. 대중적 성공을 가져온 보이스카우트 운동은 그 무대가 가지는 순수한 모습과 달리 본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소년들을 제국수호를 위한 미래의 유능한 군인을 준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초창기 유럽을 중심으로 5, 6만명이던 보이스카우트는 미국의 스카우트연맹이 설립되면서 세계 각지로 확산되었다. 1922년에는 1백만명, 1931년에는 2백만명대, 1947년에는 4백만명대로 급증했고, 현재는 걸스카우트를 포함해 5700만명의 대원과 전세계 127개의 본부를 두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1910년 '스카우팅'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1913년 일본스카우트연맹이 창립되었다. 우리는 1922년 조철호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소년군과 정성채의 소년척후단을 도입 시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년군과 소년척후단은 독립운동과 관련성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보이스카우트가 만들어지기 1400여년전에 신라 화랑들의 청소년무리들이 있었다. 현대 스카우트 운동과 화랑도는 도덕적,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군사적 훈련 등 흡사한 것이 많다.

조선소년군과 소년척후단은 1948년 대한소년단으로 명칭을 개칭하였으며, 1952년 대한소년단에 세계연맹에 가입하였다. 1969년 '스카우트활동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문교부장관(현 교육부장관)의 통제하에 공식적으로 국가로부터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각 학교에 보이스카우트운동이 운영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78년에는 박정희대통령이 세계연맹 명예총재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과거와 달리 현대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전세계 스카우트들이 함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청소년축제로 변화했다. 세계청소년들이 4만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야영을 하고 다양한 문화체험과 교류를 하는 축제장이다. 그러나 2023 새만금세계잼버리가 운영부실로 국제적 망신을 주었다. 조직위원회는 잼버리 참가자 전체를 태풍 등의 이유를 들어 전국의 공공시설과 대학 기숙사 등으로 이동시켰다. 이로써 잼버리의 원래 취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K-pop으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정쟁이 아니라 힘을 모아 잼버리 일정과 참가자들의 대책과 마무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허건식 용인대 대학원 객원교수·체육학박사
허건식 용인대 대학원 객원교수·체육학박사

하지만 스카우칭과 잼버리라는 세계청소년운동을 생각했을 때 아쉬움도 남는다. 조직위원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카우트의 본고장이라는 영국과 스카우트의 세계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미국이 잼버리장을 가장 먼저 떠났다. 대회 조직위원회측의 B플랜도 문제였겠지만, 참가국에서 제일 먼저 행사장을 떠나 서울 도심에서 버스관광을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여준 잼버리 종주국 영국팀에게 잼버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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