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해 질 녘 한 시간 차를 타고 가서 병아리풀을 마주했다. 이끼 낀 바위에 연둣빛 잎새, 보랏빛 꽃이 천지다. 가을로 가는 길목의 꽃들은 보랏빛이 많다. 고난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신비로운 모습에 황홀하다. 내 눈앞에 있는 많은 병아리풀. 땅바닥을 훑으며 어디에 있는가 찾던 꽃이 아니라 무더기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감격에 겨워 할 말을 잃었다. 오종종 모여있는 병아리들의 앙증스러운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주 작은 꽃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꽃이 피는데, 꽃이 지고 나면 바로 씨앗이 달린다. 연둣빛 벼 이삭처럼 길쭉하게 열매를 달고 있다. 한해살이풀이라 열매를 맺어가면서 끝까지 꽃을 피우는 병아리풀. 뒷배경이 이끼가 있어 어느 곳을 찍어도 작가가 찍은 사진 같다.

'자생지 '보호'라는 간판이 있다. 군에서 보호하고 있음이다. 그래서인지 바위지만 이끼가 제법 깔려있고, 얇지만 흙도 폭신하다. 잎과 꽃 그 앉은 자태에서 여유로움이 풍기고 있다. 사진 찍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원지과 식물인 병아리풀은 석회암지대 비탈면 절개지와 같이 돌조각과 흙이 섞여 있는 토양이나, 석회암 암벽 경사면에 주로 자리를 잡는데, 그 특성을 잘 파악해 보호하고 있다.

여러 송이가 모여있는 이곳과는 달리 상당산성에서 만난 아이는 띄엄띄엄 한 송이씩 딱 세 송이 피어있다. 일가도 이루지 못하고 홀로 얼마나 외로울까. 여리여리 외로워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더 많이 피어있었는데 개체수가 줄어들었나 보다. 생존전략인지 최대한 몸집을 낮추어 눈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모습을 사람들은 잘도 찾아서 밟고 뽑아가기까지 한다. 예쁜 모습 오래 볼 수 있게 잘 보존해 주어야 할 텐데.

산성 낭떠러지 길이다. 메마른 흙 속을 비집고 척박한 바위틈에서 피어있다. 풀 깎는데 잘린 키 큰 풀과 달리 그나마 너무 작아서 살아있어 다행이다.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돌 틈이나 풀숲에 숨어 있는 병아리풀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누워도 보고 엎드려 봐도 병아리는 좀처럼 그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눈 맞춤하려고 누웠다가 등산객들이 쓰러진 줄 오해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쪼그마해 담기 힘든 귀한 꽃이다.

엎드리던지 아예 쪼그리고 앉아 초점이 맞기를 기다린다. 카메라도 없이 휴대전화 사진으로 확대해 본다. 사진이 잘 나오길 바라는 간절한 열망은 숨까지 참으며 기다린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너무 흔들려서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초점이 맞아 선명한 사진이 나오면 좋아서 환호성 친다.

나는 사진 찍으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체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담아도 또 담아봐도 미련이 남는다. 땀이 비 오듯 흘려도 힘든 걸 모르는 게 꽃 보는 일이다.

꼬물꼬물 올라오는 아이들, 보랏빛 벌어진 입에는 노란 구슬이 물려 있다. 흰색, 보라색 꽃에 좁쌀이 들어있는 듯 노랗다.

작은 꽃들 앞에는 수식어가 붙는다. 병아리풀, 병아리다리, 병아리난초처럼 키가 작아서 병아리라는 말이 붙여졌고 애기나리, 애기도라지, 애기고추나물, 애기괭이눈, 애기똥풀, 애기메꽃, 애기수염, 애기마름, 애기우산나물, 애기원추리와 같이 연약하다고 하여 붙여지기도 한다.

좀꿩의다리, 좀냉이, 좀개구리밥, 좀고추나무, 좀모형, 좀붓꽃, 좀비비추, 좀회양목 등이 있듯이 왜, 벼룩, 각시 등도 식물체가 작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꽃진 자리는 어떨까 궁금했다. 한때 빛났을 병아리풀은 씨방이 여물어 연둣빛 통통하던 열매는 색깔이 퇴색되어 간다. 열매는 10월경에 맺고 편평한 원형이다. 흙색 씨앗으로 변해가다가 겨울이 되면 색이 바랜 채로 덤불 속에 있다.

볼수록 올망졸망 핀 꽃, 군에서 보호하는 병아리풀이 너무 부럽다. 청주시도 상당산성 야생화 보호에 노력해 주길 바래본다.

병아리풀 고 작은 꽃을 들여다보면서 느낀다. 꽃진 자리와 함께 모든 꽃은 우주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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