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식탁에 새로운 의자 하나가 늘었다. 기존 의자와 의자 사이에 들어 온 작은 의자 하나로 오랫동안 유지하던 4인용이라는 균형이 무색해졌다.

식탁은 우리 집 역사와 같은 존재다. 식탁 덮개로 쓰는 유리의 어지러운 빗금이 지나온 시간을 알려주고, 원목이라 군데군데 파인 흔적이 있지만 내 눈에는 늘 새것처럼 새롭다. 아파트 분양받을 때도 식탁이 놓일 공간을 먼저 선택할 만큼 애착이 깊다. 오래되어 낡고 유행이 지났다는 것은 타인이 바라보는 눈이고, 물건에 대한 고집은 그것과의 관계와 추억과 편리함에 익숙하여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음이다. 정이 왜 무섭다고 하겠는가. 떼어낼 수 없는 한 조각 반짝이던 순간을 잊지 못해서다.

폭이 넓고 깊은 의자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당시 형편으로 무리하여 샀지만 그 욕심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든 것도 식탁이다. 식탁은 풍요로웠다. 가족이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며 아이들은 성장했고, 나는 책 읽고 글 쓰면서 작가가 됐다. 커피도 마셨다. 손님이 오면 테이블이 되었다. 전망이 좋아 식탁에서 바라보는 우암산과 청주 시내 경치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되었다.

공간에 비해 큼직한 식탁은 집안의 중심이 되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 작다는 느낌도 잠시, 의자는 하나씩 비었다. 두 개의 빈 의자, 딸의 의자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분가했고, 아들이 앉던 의자는 결혼 후 빈자리가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오면 식탁은 풍요로워지다가 다시 고요해진다. 두 개 사용하는 의자, 빈 의자만큼 건조하다. 식탁에서 우리 부부는 대화가 없다. 먹기 위해 잠깐 앉았다가 일어난다. 어느 날 한쪽으로 먼지가 보였다. 의자 틈새에 먼지도 쌓였다. 늙어가면서 권태롭고 게을러지는 내 모습을 식탁에서 본다.

썰렁한 식탁이 활기를 찾았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다시 4인용 식탁이 되었다. 가족이 모두 모이면 의자와 의자 사이에 보조 의자가 필요하다. 의자 하나 놓는 것인데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그래도 같이 있어 행복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식탁의 온기에 취해본다.

가끔은 거실에 상을 편다. 상은 식탁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자유로워진다. 음식이 아니어도 되고 장소와 상 크기에 따라 공간 분위기가 다르니까 대화도 길어진다. 식탁은 편리하고 평등하게 나란히 앉지만, 상은 자연스럽게 남편이 가운데 앉게 되고 중심이 된다. 그래서 은근히 상에서 음식 먹기를 유도한다. 삶의 방향이 차이가 있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지만 밥상머리 대화에는 가족의 사랑이 있다. 편리한 지식만 쫓고 일방적인 앎의 속도는 이기심만 부추긴다. 어른의 헛기침이 사라지고, 헛기침하는 어른도 없고 모두가 눈치만 보며 권리만 요구하는 차가운 현실의 온도가 낯설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밥상에 둘러앉아 느끼는 가족의 정으로 희망을 잃지 않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1인용 새 식탁에는 이유식을 시작한 손자가 앉았다. 가족 모두 아기 곁에서 아기 입만 쳐다본다. 이유식을 보고 아함, 입을 벌리면 가족 모두도 따라서 입을 벌린다. 아기 따라 함께 음식을 삼키고 다시 받아먹는다. 내 입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맛있고 마냥 행복하다. 가족의 사랑으로 아기는 살이 찌고, 가족은 아기의 무구한 웃음으로 마음이 살찐다. 웃음꽃이 핀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데 울컥해졌다.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아들 내외로 향한 마음인지, 홀로 씩씩하게 견디는 딸에 대한 감정인지, 아직도 꿈꾸는 나를 향한 기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카메라 불빛같이 삶의 빛도 반짝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기 식탁이 있어 더욱 풍요로워진 식탁, 손자가 자라면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마련해야 할까 보다. 앞으로의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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