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속협 전문가칼럼] 유병덕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순환경제위원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에서 농업 분야가 차지하는 양은 약3%이다. 에너지 분야가 87%인 것에 비하면 농업이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비중이 작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농업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기 위한 정책은 소극적이다. 농식품부가 세운 계획은 스마트팜, 논물 관리, 사료처리제 등 기존의 농업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있다. 비료, 연료, 에너지를 과잉 투입하는 농업 양식을 유지한 채 몇 가지 기술만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애꿎은 논농업을 기후변화의 가해자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물을 가두어 농사짓는 논에서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가스효과가 20배 정도 강한 메탄(CH4)이 발생하므로 기존 농사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농부들에게 여름에 보름 이상 물을 빼고 논바닥을 공기에 노출시키도록 가르치지만, 그렇게 하면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가스효과가 300배 정도 강한 아산화질소(N2O)가 배출된다. 게다가 사막화를 맞이한 수생생태계는 붕괴된다.

정부가 농업 분야의 기후변화 대응을 증상에 약 처방하듯 하는 이유는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제연합 UN의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 IPCC는 전 세계 공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 방법을 정하였다. IPCC는 온실가스 배출량뿐만 아니라 흡수량도 계산하도록 한다. 온실가스를 흡수한다는 것은 탄소를 저장한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예컨대 산림을 잘 관리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생물체와 흙 속에 탄소로 저장한다. 농업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농경지가 생산 방식에 따라 온실가스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탄소를 흙 속에 축적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IPCC가 농사 방법에 따라 농경지를 온실가스 흡수원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온실가스를 산정하기 시작한 1990년 이래 지금까지 농경지의 탄소 축적량을 "계산하지 않음"으로 보고해 왔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저감하는 전략으로 신기술을 도입하기 보다는 흙 속에 탄소를 저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구의 육지를 덮고 있는 표토에는 탄소가 공기 속에 있는 양의 두 배나 들어 있다. 탄소순환이란 공기 속의 탄소가 흙으로, 다시 흙속의 탄소가 공기로 이동하는 흐름을 뜻한다. 공기와 흙 사이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탄소를 순환시키는 매개 작용을 한다. 농작물도 공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탄소를 자신의 몸체와 뿌리에 저장한다. 가을에 수확을 하면 과일나무는 몸속에, 볏짚 따위는 흙속에 탄소를 저장한다. 토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흙속의 탄소는 다시 온실가스가 되어 공기로 돌아가지만, 잘 관리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흙속에 탄소가 축적된다. 전 세계 농지에서 토양유기물을 1년간 0.4% 늘이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상쇄한다.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이 캠페인을 포퍼밀(4‰) 운동이라고 한다.

흙속에 탄소를 축적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대단한 이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토양유기물이 높은 흙일수록 가뭄에 강하고, 토양유실이 적고, 작물의 양분흡수율이 높고, 병해충 발생 빈도가 낮고, 재해로부터 회복력이 빠르고, 농업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이 높다. 이렇게 다양한 이익들은 농업 생산성을 높여 주므로,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식량 확보(food security)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전략은 발전소와 산업공정과 같은 배출원의 활동을 억제하는 방안으로는 역부족이다. 배출원을 관리하는 동시에 흡수원을 관리하여 토양에 탄소를 축적하는 양을 높여야 한다. 흡수원으로서 산림은 이미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산림의 흡수원 기능이 축소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변화가 산불을 더 자주, 더 크게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병덕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순환경제위원
유병덕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순환경제위원

농경지는 흡수원으로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농경지 관리는 단지 농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흙속에 탄소를 저장하는 농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경감하는 전 지구적 대안이다. 우리나라 농업분야도 온실가스 줄이는 얄팍한 기술만 찾을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농업의 기본 조건이 되는 토양 비옥화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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