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며칠 전 '책 봄'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있는 '박열 의사 기념관'을 다녀왔다. 봄이 시작되기 전부터 올해는 꼭 들러보기로 했던 곳인데 이제야 떠나게 된 나들이에 회원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몇 년 전이었던가.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방문하였다가 큰 감동을 받고 온 곳이라 회원들에게 적극 추천한 '박열 의사 기념관'. 시내에는 화원에 즐비하게 늘어선 국화꽃 속에 가을이 있다면, 이곳 마을 어귀에는 맨드라미와 백일홍이 깊숙한 가을 속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기념관 안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탐스러움이 가을의 모든 것을 풍요롭게 보여주는 듯했다. 감 이파리에 반사되어 튕겨져 나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기념관 안에 들어서자 미리 연락이 되어있던 해설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처음 독서동아리 회원들에게 '박열 의사'에 대해 이야기하자 거의 모르는 분위기였다. 개중에는 TV에서 방영해 주는 영화를 통해 언뜻 본 것도 같지만 누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영화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다. 나 역시도 이곳을 들르기 전에는 그냥 별다른 관심 없이 보아 넘겼던 영화였는데, 기념관을 다녀온 후에는 자리 잡고 앉아 몰입해서 보는 영화가 되었다. 독립운동가 '박열'을 널리 알리기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열의사 기념관은 총 2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에는 박열의사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 발자취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이자 박열의 아내였던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있었다. 박열 의사에 대해서 쓴 책도 여러 권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그 당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재판 기록이 적힌 책도 있었다. 2전시실에서는 박열의 신조선 혁명론 '나는 사고하고 행동한다 온몸을 바친 독립운동의 일꾼으로서 한 병졸로서 일한다'는 문구가 발길을 잡아 한참을 머물렀다.

해설사의 안내가 끝나고 우리들은 다시 한번 찬찬히 기념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기념관 옆에 있는 가네코 후미코의 묘 앞에 서서 진지하게 묵념하고 돌아왔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렀다. 식민지 조선의 고통과 해방을 위해 투쟁한 여인. 국가 권력과 사회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무정부 사회를 주장했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빌려온 도서는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가 지은 '가네코 후미코'인데 책의 첫머리에는 후미코에 대한 예심 재판 과정에서 예심판사 다테마쓰 가이세이가 천황제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그녀의 전향을 위해 일곱 차례나 설득하였다는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의 부록에 실린 후미코의 편지들을 통해서는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과 스물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의 삶과 투쟁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한 것이었는지를 오롯이 알 수 있었다.

C회원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열 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며 그 시대 그 시점으로 들어가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보았노라고 했다. 그녀가 올린 책은 후미코의 얼굴이 정면으로 그려진 옥중수기 '나는 나'였다. 박열 기념관에서 훅 치고 들어온 후미코의 삶과 선택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후미코의 삶을 보며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처연함과 마음 한편으로는 경외심을 가졌다고 했다. H회원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해 독서노트에 정리 중이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가네코 후미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여인.

조선인의 고통과 해방을 위한 그녀의 투쟁이 설령 조선의 확대된 그녀의 자아였다고 해도 우리는 그녀의 이름이 가슴에 잔잔히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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