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사제와 교육자로

편집자

1962년 1월 충북 괴산 청안에서 태어난 이수한 시릴로 매괴여중·매괴고등학교 교장신부는 평생을 사제의 길과 교직의 길을 걸어오며 내년 2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 그는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라는 성경 구절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더 나아가 생각과 말로 그치지 않고 행동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살아온 이수한 교장신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나눔 앞에 담대하고 사람앞에 따뜻한 삶,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지만 돌아보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 교장신부.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매괴여중과 매괴고등학교를 이끌고 있는 이수한 교장신부를 만나봤다.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회옥색 남방과 화이트 진을 입고 반갑게 맞아주는 이수한 교장신부를 보고 적지않게 놀랐다. 기자의 막연한 생각으로는 '신부님이니까 늘 사제복을 입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사복차림으로 출근하고 일정이 있을 때는 사제복을 입는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따뜻한 드립커피 한잔과 함께 나눈 이 교장신부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이끌림'으로 사제로서, 교육자로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괴산 청안초등학교와 음성 한일중학교, 청주 운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가톨릭대를 졸업한 그는 1992년 6월 29일 사제수품을 받았다. 규모가 작아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본당신부가 순회하며 사목하는 천주교공동체인 공소회장을 맡아온 부친의 영향으로 이 교장신부는 자연스럽게 신부의 꿈을 꾸게됐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중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않아 당시 청안 파출소에서 사환생활을 했었다. 14세의 어린나이로 경찰서와 군청 등에 문서수발을 하며 한달 1만 5천원의 급여를 받아가며 1년을, 큰 형이 일하는 곳에서 1년을 일해 다른 또래보다 2년 늦게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사제의 꿈을 가졌기에 서울에 있는 소신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서 운호고등학교로 전학오게 됐고 신학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늦은 나이 때문에 바로 입대해야 했다. 중학교 진학부터 신부가 되기까지 어려운 고비마다 은인들의 도움을 받았고 신부가 되면 꼭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됐다.

사제서품을 받고 봉명동 보좌신부를 거쳐 처음으로 괴산본당 신부로 발령을 받게됐다. 당시에도 괴산은 노인이 많았고 경로당에서 온종일 보내는 어려운 노인을 편하게 모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괴산성당 안에 있는 구 수녀원을 리모델링 해 5명의 노인을 모셔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 사회복지와 관련된 자격증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1995년 즈음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1998년 학위를 받았다.

1999년 꽃동네대학교 개교 이후 사회복지학부에서 18년을 교수생활을 병행하며 학생들에게 사회복지에 대해 가르쳤다. 사회복지 중에서도 특히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2천년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개관을 시작으로 2005년 청원군노인복지회관, 청주재가복지센터, 청원재가복지센터, 노인보호전문기관, 청원시니어클럽, 청원노인행복네트워크 센터, 오송종합사회복지관 모두 초대관장을 역임했다. 복지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10여년간 행동하는 복지연합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처음 노인복지관을 시작할 때 이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인복지회관이라는 것은 막연히 큰 경로당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이름을 좀 거창하게 노인종합복지관이라 짖고 이름에 걸맞게 노인복지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최소한 연계할 수 있는 기관이 되고자 노력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의원, 물리치료실, 목욕탕, 이발소, 당구장 등 당시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장소적으로도 복지관의 개념이 변화하다보니 이곳을 이용하는 노인들도 조끔씩 변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롤모델이 되면서 벤치마킹을 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는 충북노인학대 예방센터 개소라 했다. 2002년 당시 국가 인권위원회 요청으로 노인학대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어떤형태로든 3명중 1명은 학대를 받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이를 근거로 공동모금회에 신청해 지금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전신인 노인학대 예방센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본당신부에 대학교수에 노인복지관 관장 등 1인 다역의 역할로 그의 삶을 나눴던 것이다. 또한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야기가 나올 때 청원청주통합군민협의회 위원장을 맏으며 2014년 통합청주시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매괴여중·고 전경.
매괴여중·고 전경.

사세수품 후 첫 발령지인 괴산성당 유치원 원장부터 꽃동네대학 교수로 근무한 경력으로 교장자격을 얻은 이 교장신부는 지난 2017년 9월 매괴여중과 매괴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솔직히 왜 걱정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학교에 와보니 학생들이 인사성도 바르고 학폭도 없을만큼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어요. 저는 서로 아끼는 학교 문화와 서로의 관계가 중요하다 생각해요"

이 교장신부가 기관 운영시 중점을 두는 것은 두가지다. 수평적 사랑과 수직적 사랑. 수평적으로 교사들이 화목하고 행복해야 수직적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합리적이고 권한만 있다면 들어준다는 이 교장신부는 학생들에게 '천사'라는 칭호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일까? 2년전 폐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소홀히 한 뒤 방치하다가 지난해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후 다행히 지금은 정상수준으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퇴직까지 4개월 남은 이교장신부는 다시 교장퇴직 후 신부의 삶으로 돌아가 교구의 명을 따를 계획이다.

 

[인터뷰] 이수한 매괴여중·매괴고 교장신부

내가 행복해야 교사도 행복,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

"학교는 누구 하나가 만들어 가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야하는 유기체입니다. 뿌리, 줄기, 잎으로 구성된 나무는 나누면 죽습니다. 서로 신진대사를 통해 아낌없이 나눌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 구성원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장의 역할이지요.

권위적인 교장보다는 소통하는 교장, 신진대사를 잘 할수 있도록 좋은 관계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이수한 매괴여중·매괴고 교장신부. 이 교장신부는 교육현장이든, 다른 조직이든 관계가 좋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관계가 깨지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저는 제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합니다. 학교로 보면 저의 존재 이유는 교사이지요. 제가 교사를 위한 존재로 살아갈 때 교사는 학생들을 존재이유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행복해야 선생님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또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학생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교장신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삶이라 말한다. "앞으로의 인생이 얼마가 남았든 그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는 잘 살다 갈 수도 있고, 잘못 살다가 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교장신부는 학생들에게도 똑 같이 당부했다. "지금까지 공부를 소홀히 했더라도 이제부터 공부하면 공부하다 졸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지금까지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소홀히 하면 공부도 안하고 졸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쌓여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말이다. 학생들의 고운 인성에 지식을 쌓으면 그만큼 더 큰 사람이 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이교장신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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