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옥산중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교직 서른네 해를 넘기고 있다. 생거 진천을 거쳐 그늘재 음성을 지나 미호강이 흐르는 청주 옥산에 오니 또 새로웠다. 내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은 풍물팀이었다. 그 어린 중딩들이 꽹과리를 들고, 북과 장구를 치며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아, 아직도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전통을 잇는 학교가 있구나! 난 속으로 매우 기뻤다.

그렇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하면서도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사물놀이팀이 꽤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찌 보아야 하는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은 결과다. 오죽하면, 국악을 교육과정에서 뺀다고 해서 얼마나 야단이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전통을 모르는 민족에게 자기 정체성은 없다.

시월 상달이라 좋은 날이다. 우리 옥산중 풍물팀이 청주를 대표하여 제14회 충북청소년민속예술제에 나갔다. 제27회 충북민속예술축제와 함께하는 행사였다. 뜨악했다. 충북의 시·군은 모두 열한 곳인데 대표로 나온 팀은 달랑 세 팀이었다. 앗, 이럴 수가. 어른 팀은 그나마 꽤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과 동행하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촬영했다. 감동이다. 풍물 복장을 하고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펼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애들이 이 수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땀을 쏟았을까. 지도 선생님은 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까.

내가 자랄 때 명절에는 어김없이 풍물패가 나타났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면서 집 마당에 들어가 한참이나 공연을 펼치고는 멍석에 털썩 앉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가끔은 동네 어른이 북채를 쥐여주어 치곤 했다. 얼마나 신나고 흥겨운지 온 세포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내 몸속에는 그런 유전자가 있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한오백년이라는 노래 시작이다. 정말 한 맺힌 노래다. 우리 민족은 한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흥의 민족이기도 하다. 한을 흥으로 풀었다. 노랫가락이나 풍물은 흥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공연 이름은'옥산 풍장'이다. 신나게 돌아간다. 모두 열여섯 마당을 보여준다. 갈지자 진으로 시작하여 꽃봉우리 진, 쌍줄백이 등으로 쭉 나가다가, 멍석말이와 춤마당에서 흥을 한껏 돋우고는, 개인 놀이에서 상모를 돌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풍장 한마당을 하는데도 주제가 있고 의미가 스며 있었다. 마치 한바탕 인생을 연출하는 듯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노닐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 장렬한 삶의 한 장면 말이다.

옥산에는 미호강이 흐른다. 미호 평야는 비옥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옥산 풍장은 오랜 세월 흘러온 농경문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미호강과 함께 독특하게 계승 발전해 온 듯하다. 한마디로 전통이다. 전통이란 그치지 않고 흘러가는 물이다.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며 논에 물을 대주고, 끝내는 바다로 들어간다. 물이 없으면 땅은 타들어 가고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물처럼 흘러야 한다. 그중 민속문화는 우리의 유전자다. 한과 흥의 씨앗이다. 이를 어찌 버리겠는가.

옥산 풍장은 대상을 차지했다. 근데 좀 쑥스럽다. 겨우 세 팀에서 우승이라니.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나는 직접 촬영한 영상과 사진으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학교 누리집에 올렸다. 그리고 교직원 단톡방에도 올렸다. 그냥 내 마음의 표현이다.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아련히 사라지는 것들이 아쉽다. 살릴 것은 살려야 한다. 전통 민속놀이인 풍물이 대표적이다. 학교마다 운동 육성 종목이 있듯이, 전통 민속놀이 하나쯤 키우면 안 될까. 밥상머리 교육이나 효 사상 등이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다. 아,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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