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 없던 시절, 꽃피는 산골동네 기억하며 노래"
한국가곡 음반 '고향의 봄' 발매… 이국 생활 아픔과 그리움 담아
K-클래식 저변 확대 공감 시도

편집자 

'살아있는 최고의 베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지난 2018년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은 오페라 가수인 그가 '고향의 봄'이라는 음반을 낸 것이다. 이 음반은 클래식 문화예술 플랫폼인 '풍월당' 창립 20주년 첫 기획 음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광철씨는 지난 7월 통영 국제 음악당에서 녹음작업을 마쳤다. '비목'·'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 '그집 앞'(현제명 작곡) 등 대표적인 명곡부터 '산 속에서'·'산복도로'(김택수 작곡) 등 신작까지 총 18개의 곡이 담겨있다. 특히 목소리로만 나지막히 읖조리듯 부르는 '고향의 봄'은 마지막 트랙에 담겨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에 연광철씨에게 이번 음반을 발매하게 된 배경과 과정,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전화인터뷰로 들어봤다. 

 

'살아있는 최고의 베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살아있는 최고의 베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연이 캔슬되면서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다. 그 기간 클래식 음반점인 풍월당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독창회를 여러번 했는데 그때마다 한국가곡을 불렀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한국가곡을 부르고 싶은 생각이 굉장히 많았는데 마침 그런 기회가 됐고 2년정도 준비해서 녹음을 하게 됐다."

이번 음반은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대표적인 가곡들을 들을 수 있다. 지난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의 아름다움을 고려한 곡들이 엄선됐다. 신박듀오로 활동중인 피아니스트 신미정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나희덕 시인의 '산 속에서'와 황경민 시인의 '산복도로' 등 두 편의 시가 신작으로 담겨 있다. 특히 판잣집, 골목, 술상, 사랑방, 우글우글 바글바글 등의 키워드가 담긴 '산복도로'라는 곡은 빠른 템포로 표현된 연광철의 저음을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무반주로 목소리로만 그려낸 '고향의 봄'은 압권이다. 충주 출신인 그가 생각한 고향은 어떤 모습일까.

 

'살아있는 최고의 베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살아있는 최고의 베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고향의 봄은 가곡도 가요도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누구나 알고 있던 곡이다. 예술 가곡으로 작곡이 된 것도 아니라 반주가 따로 있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대로 반주를 하는 곡이다. 그런 이유로 무반주로 부르게 됐다. 그 곡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고향을 떠나와서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외국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저는 충주댐이 없던 시절에 댐에서 가까운 산골에 살았다. 그렇기에 꽃피는 산골이라는 가사를 보면 구체적인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그곳엔 버드나무가 있었고, 수양버들이 춤추는 시골동네로 10가구가 채 안됐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시기였다. 먼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고, 고개를 넘으면서 닿는 기억들이 잘 표현된 곡이어서 표현하는데 많은 영감과 공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번 음반은 영어, 일어, 독일어로 번역돼 전세계로 발매되고 LP도 초도한정으로 제작된다. 한국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는 가곡을 외국인들은 어떤 정서로 공감하고 들을 수 있을까.

"이번 음반은 단순히 번역의 수준이 아닌 시적표현과 감성적인 것들을 고려해 번역에 특히 공을 들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농경문화, 그들은 유목민을 선조로 둔 민족이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자연환경도 다르다. 독일 내에서도 알프스에서 사는 사람과 함부르크 평지에서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자연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은 사랑과 향수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비슷하기에 음악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 모습.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 모습. 

성악가 연광철은 베이스 특유의 저음으로 절제하듯 여백의 미를 담아내며 한국가곡의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가곡으로 표현된 한국 시(詩)의 아름다움은 연광철의 목소리가 방향보다 속도가 중시되는 이 시대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가곡, 성악가는 어떤 의미일까.

"가곡이라는 것은 노래 이전에 시(詩)다. 시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불러야 하는데 굉장히 많은 성악가분들이 소리를 내는데 급급하고 있다. 곡을 해석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전혀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 경우도 많고 목소리 자랑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제 경우에는 그 시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시성(詩性)을 가지고 그 시를 썼는지 접근한다. 소리로써 표현할 때 성악적인 것은 단순히 음의 높낮이가 아니라 시를 표현하는데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훨씬 더 절제되고 시상(詩想)을 벗어나지 않게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성악가이기 때문에 노래를 보여주고 소리를 내야 된다는 부분은 가장 기술적인 문제로 해결했다. 그렇기에 소리를 많이 낸다든가 울분을 토해낸다던가 이렇다기 보다는 시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성악가 연광철2: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로시니 오페라 '웰리엄 텔'에서 멜히탈역으로 분한 모습. / 사진= 본인 제공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이 지난 3일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로시니 오페라 '웰리엄 텔'에서 멜히탈역으로 분한 모습. 

베이스 연광철은 충주공고와 청주대 음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부친은 소를 팔아 유학자금을 보냈고 지난 1993년 오페랄리아 국제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더욱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고 서울대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지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베를린 슈타츠오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열 오페라, 파리 바스티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K-클래식과 세계적인 무대를 꿈꾸는 성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궁금했다.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유럽사람들의 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 문화속에서 젖고, 잘 알아야 한다. 지금은 너무 우리 것만 가지고 그들의 것에 접근하려고 한다. 가령 한복을 입고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시간내에 경쟁과 결과를 원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경쟁과 결과에 사람의 그릇크기를 좌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것에 초연할 필요가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성악을 해서는 안된다. 좀 더 긴 시간동안 하나의 예술로써 접근해야 한다. 예술전반에 걸쳐서 일테면 건축, 미술, 종교 등의 분야를 섭렵하고 공부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생 전체를 예술에 몸담고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빠른 시간내에 성공과 경제적 여유,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음악과 클래식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도 물었다.

"음악을 듣는 분들도 매스컴에서 이야기하고 광고하는 것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어떤 성악가가 어떻게 노래하는가에 대해 자주 들어보면 음악을 즐기는 전문 감상자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면 실제로 그들의 문화에 얼마나 근접하게 연주하고 관객들이 얼마나 그것을 알고 있냐에 따라서 환호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 수묵화의 기법을 알아야 수묵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을 감상하는 분들도 그런 지식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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