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얼마 전부터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다. 효에 대해 동양윤리는 말하기를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요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 라고 했다. 거칠게 풀이하면 '몸의 모든 부분이 부모님께 받은 것이니 그것들을 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정도이리라.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를 잘하지 못했지만 왜 육십 대 중반에 쓸개를 빼버린단 말인가? 그 사연을 변명삼아 늘어놓아 보자.

언젠가부터 배가 몹시 아픈 때가 여러 번 있었다. 통증을 참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최근까지 수차례 그런 일을 겪고도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횟수가 많아지고 빈도가 잦아져 걱정이 컸다. 기도하고 소화제 먹고 얼마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달라서 너무 심하게 아팠다. 견디지 못하고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판독한 결과는 담도에 돌이 끼어서 아픈 것이니 그것을 꺼내고 쓸개를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담도에 돌을 꺼내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갑자기 쓸개를 없애자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좀 더 큰 병원에 갔다. 더 많은 검사를 하더니 그 날 담도에 걸린 돌을 꺼내고 날을 잡아 쓸개를 떼잔다. 두 번째 들으니 충격이 덜하고, 쓸개를 떼어내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많이 밀려 있어 멀찍이 수술 날을 잡고 집에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는데 가끔 예전과 유사한 아픔이 찾아오고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들과 함께 해외 나들이를 계획한 것이 있어 걱정이 많았다. 가능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전문 병원에 가보니 여러 검사를 하고는 결론이 역시 쓸개를 제거하란다. 소개해 준 병원에 들렀더니 바로 입원해 수술하잔다. 이튿날이 주일이어서 예배를 마치고 입원하기로 했다.

수액을 달고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4인실을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지만 긴장으로 잠 못 이루다, 날이 밝자 찾아온 아내와 딸과 함께 간략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대 위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이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내 병실에 돌아와 있었다. 숨이 찼고 무척 메스꺼웠다. 간호사로부터 열심히 기침하고 가래를 뱉으라고 들었는데 그런 일은 별로 없었다. 두세 시간 지나니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 아픈 줄 모르고, 동기 목회자가 보내준 시 같은 산문집을 읽었다.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가득했다.

왜 내 쓸개가 못쓸 쓸개를 넘어 몹쓸 쓸개가 되었을까? 내 신체에 영향을 준 게 온전히 나였으니 책임도 내게 있다. 내가 관리를 잘못한 것이다. 잘못된 쓸개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나 미안하게 여기고 중도에 떠나가는 이별에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다.

줏대 없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일컬어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한단다. 쓸개를 한자어로 담(膽)이라고 해서 담력이 세다, 대담하다, 담이 약하다는 표현을 쓴다. 이제 나는 무담(無膽)인 셈이다. 내가 귀가 얇아 줏대가 약하고 상황파악이 늦어 제 때 정신 차리지 못하니 본래 담이 약하고 쓸개 빠진 것과 다를 게 무엇이었나. 쓸개가 있어도 빠진 것 같은 삶을 살았던 게다.

자료를 검색하니 수술 후 조심해야 할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심하라는 음식들은 먹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하루에 두세 잔을 마시던 커피도 수술 후 전혀 마시지 않고 라면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생각한다. 어떤 일에나 입찬소리를 하지 못할 경험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저울에 달아보니 부쩍 몸무게가 줄었다. 다 쓸개 무게는 아니겠지만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고생했나 보다. 내가 아프니 주변 사람들 수고에 둔감하다. 많이 수고하고 위로받지 못한 이들에게 생뚱맞지만 내 쓸개가 빠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그랬을 거라고 변명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어느 날부터 나는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매사에 정신 차리지 못해도 너무 나를 비난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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