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부처가 없는 불당이 있다. 암자인데 부처님이 안 계신다고? 의문을 품고 법당문을 열고 들어가니 불상이 없다. 불상 앞에 앉아서 보면 정면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사불산 정상에 있는 사면석불을 향해 참배한다. 유리창 너머 산꼭대기에 사불암이란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의 사면에 부처님이 새겨진 부도 석불이 있다. 동과 서는 좌상, 남과 북은 입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불 부처님 사면석불을 모시기 위해 사불전을 세워 모시게 된 것이라 한다.

사불전을 돌아가니 기와 담장에 꽃이 피어있다. 둥근잎꿩의비름과 눈이 마주쳤다. 몇몇 곳에서만 자생하는 흔하지 않은 가을 들꽃이다. 단풍이 들면서 꽃이 필 때가 가장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진작 오고 싶었지만 거리가 먼 탓에 미루다 왔더니 절정의 때를 지나치는 중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군락지를 마주하는 꽃에 배고픔도 잊고 해죽 웃는다.

누가 둥근잎꿩의비름을 귀한 꽃이라고 했던가. 개체수가 적어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했다가 얼마 전에 해제한 꽃인데 이 절에는 꽃 멀미가 날 정도로 많다.

암자 초입에서도 바위에 핀 꽃이 있다. 오돌오돌 앙증맞은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탄성을 지르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축대 사이 계곡이 온통 울긋불긋하다. 계곡 옆 바위는 뒷배경이 되어 꽃을 더 돋보이게 해 준다.

홍자색 꽃 빛만큼이나 둥근 잎이 두툼하다. 예쁜 잎을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계곡 바위틈에서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어찌나 고운지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모습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배가 되게 한다.

둥근잎꿩의비름의 생존 전략은 비가 오거나 물안개가 피어날 때 다육질의 두툼한 잎과 줄기에 물을 잔뜩 저장해 두고 조금씩 아껴 쓴다. 그렇게 가뭄은 버티지만,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등산로 주변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가 힘들다.

집 가까운 산성을 자주 찾다가 등산로 옆 바위에서 둥근잎꿩의비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제대로 크지도 못한 두 송이가 피었다. 처음 눈맞춤하고 생각할수록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 한 송이 야생화로 인해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후 산성 가는 발걸음이 잦았다. 운동보다는 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올해는 바위에서 떨어지려고 해서 야생화 동인들이 이끼도 붙이고 물도 주면서 돌보고 있다고 하여 꽃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랬는데 꽃이 피기도 전에 잎을 뿌리째 다 뽑아가고 없다. 얼마나 급했는지 바닥에 뿌리째 두 송이 팽개쳐 놓고서…. 허탈함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난 눈물까지 나려고 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둥근잎꿩의비름이 물을 몸속에 저장해 두고 조금씩 아껴 쓰듯이 귀한 꽃일수록 탐을 내기보다는 보호하고 아낄 줄 아는 지혜가 못내 아쉽다.

절 전체에 핀 꽃들은 한창 피어있는 꽃도 있고 시들어 열매를 매단 꽃도 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가을이다. 화려하게 핀 꽃들도 이별이 가까운 계절. 나무를 가렸던 무성했던 잎과 꽃들이 가을바람에 모두 떨어지면 온몸을 드러내야 하는 체로금풍 體露金風의 계절이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다 드러날 때는 어떤지 우리 마음의 번뇌를 묻자, 간명하게 답을 주는 일자선一字禪으로 유명한 운문 선사의 답은 한마디로 체로금풍이다. "가을바람이 불면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거야." 화려한 잎과 꽃에 가려졌던 나목의 본래 모습,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깨우침이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변화에 맞게 살아가는 삶.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지와 잎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제껏 애써서 가지려고 아등바등했다. 가리고 꾸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떨어졌을 때 내 모습을 보자. 있는 것 툴툴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산성에서 꽃이 피기도 전에 뽑아간 이도 욕심을 부려서다. 때가 되면 비워야 하는데 움켜만 쥐고 있다. 돌아갈 채비를 하는 둥근잎꿩의비름을 보며 비움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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