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없이 치닫던 한국의 폭주는 결승문턱에서 멈춰섰다.

하지만 `막대풍선 응원'으로나 인식되던 한국 야구는 1, 2라운드 6전 전승을 달리면서 세계 무대의 신흥 강호로 정체성을 확인했다.

한국은 지난 3일 1라운드 1차전 대만전을 앞두고도 '4강이 목표'라고 했지만 대표팀 안팎에서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평을 들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을 겸해 열린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꺾은 대만조차 쉽지 않은 데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일본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게 대다수 평가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본선에 올라 간다 해도 세계 최고의 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힘겨운 상대가 즐비했다.

◇폭주기관차 시동 걸다(3일 일본 도쿄돔.2-0 승)
지난 해 말부터 전지훈련을 시작해 조직력을 다져온 대만은 한국을 2라운드 진출을 위한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한국의 승리.

선발투수 서재응(LA 다저스)을 시작으로 김병현(콜로라도 로키스), 구대성(한화.전 뉴욕 메츠),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빅리그 투수들이 대만 타선을 완봉했고 승리를 장담하던 린화웨이 대만 감독은 "빅리거들의 벽이 높았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몸 풀고 가속도 붙이다(4일 일본 도쿄돔.10-1 승)
2차전 상대는 약체 중국은 한국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타격감도 되찾게 해준 좋은 `보약'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417승을 거뒀던 짐 르페브르 중국 감독은 "이처럼 강한 팀을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한국은 2라운드나 토너먼트에 나가서도 선전할 능력을 갖췄다"고 내다봤다.

◇숙적 무릎 꿇리고 브레이크 잃다(5일 일본 도쿄돔.3-2 승)
3차전은 벼르고 별러오던 한일전.

일본의 빅리거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못 이기게 해주겠다"고 말했고 간판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 라이온스)도 "아직 멀었다는 것,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을 심어주겠다"고 말하는 등 도발적인 발언을 늘어놓던 터였다.

하지만 `굴욕'은 일본의 몫이었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은 1-2로 뒤지던 8회에 투런홈런을 날려 5만4천석 도쿄돔을 순간적으로 얼려버렸다. 도발의 선봉장 이치로는 "굴욕적"이라는 말로 경기 소감을 요약했다.

◇북중미 파워를 제압하다(13일 미국 에인절스타디움.2-1 승)
미국 본선으로 불리는 2라운드에서는 파워가 한층 나은 북중미 팀들과 맞붙기 때문에 판이 달랐다.

하지만 한국의 승승장구는 여전했다.

멕시코와 1차전에서는 선발투수 서재응을 비롯한 마운드가 든든했고 결승 홈런포를 쏴올린 이승엽의 방망이도 돋보였다.

◇세계 최강 누르고 두려움 자체를 잊다(14일 미국 에인절스타디움.7-3 승)
세계 최강 미국과 2차전은 두려웠다.

지난 해 메이저리그에서 다승왕에 등극한 `토네이도' 돈트렐 윌리스(플로리다 말린스)는 "공 50개로 경기를 끝내겠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결과는 한국의 7-3 완승. 한국은 역사를 새로 썼고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롯데 자이언츠)을 선발로 내세워 미국 타선을 틀어 묶은 한국은 국민타자 이승엽이 입만 살았던 윌리스에게서 홈런을 때려 냈다.

1-3으로 뒤진 4회에 2사 2루로 다시 코너에 몰린 미국은 자존심도 잊은 채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걸렀고 대타로 등장한 빅리거 최희섭은 장쾌한 스리런포를 날려 미국을 그로기에 몰아넣었다.

◇`공포의 구단'으로서 일본을 또 울리다(16일 미국 에인절스타디움.2-1 승)
마지막 3차전은 다시 한일전.

한국이 `공포의 구단'으로 떠오르면서 일본의 도발은 실종됐지만 한국으로서는 아시아 맹주 확립을 위해 양보의 여지가 없는 한판이었다.

승부는 일본 프로야구(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버림받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바람의 아들' 이종범(기아)의 방망이에서 갈렸다.

`0'의 행진이 이어지던 8회초 1사 2, 3루에서 이종범은 후지카와 규지의 4구째에 방망이를 돌렸다. 타구가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가르며 펜스까지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며 선수들과 관중은 이미 승부도 갈린 것을 직감했다.

최정예 요원들이 맞붙은 사상 초유의 경기에서 한국에 두 차례 연속 무릎을 꿇은 일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선수단 전원이 멍한 표정이었다.

◇아쉬운 급제동(19일 펫코 파크.0-6 패)
폭주 때문에 더 큰 아쉬움으로만 남는 한판이었다.

2라운드에서 미국이 멕시코에 지는 바람에 기사회생한 숙적 일본.

그들은 세계사에서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지만 `신풍(神風)이 불었다'고 떠들 것 같다.

한국은 0-0으로 맞선 7회초 1사 2루에서 김병현이 후쿠도메 고스케(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우중간 펜스를 넘는 홈런을 맞고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해 봉중근(신시내티 레즈)과 손민한을 투입했지만 3점을 더 내줬다.

일본은 8회 말에는 다무라 히토시(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배영수로부터 펫코파크의 가장 먼 펜스를 넘기는 솔로홈런을 뽑아내 완승을 자축했다.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계 금언과 `3패를 당하고도 결승에 나가길 원하는 팀이 어디 있느냐'는 원망이 귓전을 맴돌았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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