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장은진 동남유치원 수석교사

오늘도 길을 나서 본다.

작은 골목을 지나 여러 개의 가게와 그 앞의 나무들이 지난밤의 많은 일들이 오고 갔음을 말해준다. 길 위에는 많은 풍경이 있다. 지난 5월 엄마와 함께 제주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 엄마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알지 못하는 나무와 들풀들이 빼곡한 길을 만났다.

엄마는 이야기한다. 어릴 적 우리들의 이야기. 아버지와 지내 온 시간들을 우리에게 늘어 놓으셨다. 길은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 없도록 길었고 우리의 이야기 또한 끝없이 보이는 길 따라 이어졌다. 반듯하게 잘 구획된 도시의 길은 보기에도 시원스럽고 좋지만, 구부러지고 휘어진 오솔길이 좋을 때가 있다.

직선으로 끝없이 뚫린 길은 지성과 이성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길일 것 같고 끝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오솔길은 현실에서 비켜선 사람까지도 포용할 것 같아 정감이 간다. 우리는 그런 길을 택해 엄마와 동행을 나섰다. 어깨를 부딪치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심중이 같을 리는 없겠으나, 숲이 있는 길이 좋아 길을 나선 밝은 얼굴에서 동기는 같을 것 같다. 길 양쪽에 핀 들꽃이 반기는 길모퉁이에 우리는 앉아본다.

꽃들로 길 주변을 가꾸어 놓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지만, 땀 흘리는 길 주인이 되어 보지 않고 어찌 꽃 색의 조화로움의 의미를 말할 수 있을까. 산 아래로 보이는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느리고 작아 보인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훤히 트인 길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남다른 고통과 고뇌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사통오달(四通五達)의 길을 마음 내키는 대로 걷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의 길이다. 그동안 나의 길에는 교사로서의 어려움이 있었고 가족의 길 또한 말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었기에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지만 지나온 시간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문득 지나쳐 버린 길가의 들꽃도 보는 여유와 무심히 흐르는 구름을 보며 현실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한 삶의 길을 가고 싶다.

투명화상
장은진 동남유치원 수석교사

그동안 내가 걸어온 풍상을 돌아본다. 교사로서 살아온 길은 까마득하고 살아갈 길은 끝이 보일 듯하다.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사연들이 흉몽처럼 되살아난다. 학교를 떠난 뒤 사람들이 오솔길 어느 한 곳을 지키는 작은 풀꽃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바람도 나의 욕심이라는 듯 전선주에는 참새 두어 마리가 몸을 비비며 재재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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