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미경 시인

나는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다. 누구는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라 하고 누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책을 맘껏 읽을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다.

학기 중이면 아이들은 아침 일찍 도서관 문을 열기 전부터 문 앞에 줄 맞춰 나를 기다린다. 매일 도서관을 찾아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 내가 골라주었던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또 추천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 책을 읽지 않더라도 놀고 싶다며 찾아온다.

참새처럼 짹짹짹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하루의 삼 분의 일을 보낸다는 것은 젊게 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시끌벅적하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도서관의 공기가 방학인 요즘은 스스로 가둬버린 폐가 식 서가처럼 적막이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방학 때도 학기 중처럼 많은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본다

시끌벅적했던 독서 교실이 끝났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간식과 선물 공세로 아이들이 올 수 있게 홍보를 한다. 하지만 방학에만 가능한 늦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이들, 영어학원, 수학학원, 태권도학원, 공부방이 기다린다는 아이들, 책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재미있다는 아이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많은 유혹과 책임이 아이들의 발길을 끊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매일매일 찾아오는 몇몇 아이들, 그중에 5학년 소현이는 나에게 있어 최애의 고객이다. 평소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 장난삼아 "안녕하세요, 천 고객님.", "안녕히 가세요, 천 고객님." 했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대출하는 바코드 리더기는 마트에서 계산하는 리더기랑 같은 것이다.

소현이의 루틴은 오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오싹오싹 당근책 같은 그림책을 책상 위에 열 권 이상 가져다가 전부 읽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만화책만 책상 위에 가득 올려놓고 읽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잃어버린 얼굴 한 권을 오전 내내 읽기도 한다. 잃어버린 얼굴을 읽는 동안 소현이의 얼굴은 책 속에 빠져 볼 수가 없다. 그러다가 어떤 날엔 "선생님 도서관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말을 걸기도 하고 "혹시 간식 없어요." 하며 먹을 것을 달라고도 한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동생이 하는 방과 후 교실이 끝났다며 동생 돌보러 가야 한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다.

소현이가 떠나고 조용하기만 한 겨울도서관의 창가는 햇볕이 유난히 따뜻하다. 그곳엔 베고니아, 나도제비난, 홍콩야자, 호야, 석부작이 서로에게 등을 기대며 신선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겨울 방학 동안 나의 루틴은 몇몇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과 아이들을 대신하여 창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화초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읽지 못했던 책 몇 권을 선정해 놓고 읽는 것이다.

어젯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잘 견뎌줘서 참 고맙다로 시작한 눈빛 인사와 블라인드를 올리고 햇볕이 더 잘 들게 불투명 유리창을 하나 열어주고 화초들에 물을 준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기린처럼 길게 뻗은 홍콩야자와 제비처럼 날아갈 듯한 나도제비난, 하늘하늘 손짓하는 괭이밥, 지난해 꽃을 세 번이나 피웠던 행인 스타일의 호야는 겨울잠을 자듯 조용하다.

그중에 어쩌다가 난 화분 구멍에 터를 잡았는지 유난히 애착이 가는 괭이밥, 평소에는 잡초인 줄 알고 뽑아내기가 일쑤였는데. 뽑아내고 나면 싹을 틔우고, 뽑아내고 나면 또 싹을 틔우는 질긴 생명에 자꾸 눈길이 간다.

괭이밥 꽃 꽃말은 빛나는 마음이라고 한다. 밭이나 길가 빈터에서 흔히 자라지만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면 어디든지 잘 자란다고 한다.

김미경 시인
김미경 시인

아이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겨울도서관이지만 하늘하늘 웃고 있는 괭이밥처럼 도서관은 항상 그 자리에서 수많은 책을 책꽂이에 차곡차곡 진열하여 많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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