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가장 훌륭한 글귀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함께 사는 길'을 꼽을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길, 남과 북이 함께 사는 길,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길… 이처럼 '함께 사는 길'은 무엇을 붙여놓아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 말이다. 입시와 취업, 전쟁 같은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착하게 살자'는 말 만큼이나 부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6차 대멸종에 직면해 있는 인류에게 '상생'과 '동행'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문구만큼이나 시의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도 없다.

'함께 사는 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기관지의 제호이다. 1993년 환경운동연합의 창립 직후에 발행을 시작하여, 지난 30년 동안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감시하고 사람과 자연의 피해를 대변하는 보도활동을 지속해 온 환경저널이다.

'함께 사는 길'은 자칭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이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한 생명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이다. 우리별을 지탱불가능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사람이다. 기후위기와 지구 전역의 플라스틱 오염,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의 대멸종 사태를 불러온 존재, 우리조차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피해자이기도 하다. 슬픈 일이다. 그래서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함께 사는 길'은 한국 환경운동의 가장 온전한 기록을 담고 있다고 전한다. 단 한 호의 결호도 없이, 1993년 7월에 창간호를 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달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한국 환경운동사의 모든 장면과 시민의 활동이 담긴 기록이 '함께 사는 길'에 있다. 자연을 지키고 환경문제로 피해를 겪은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시민들의 분투가 '함께 사는 길'에 담겨 있다.

이 속에는 청주와 충북지역에서 펼쳐 온 환경운동의 역사도 온전히 담겨 있다. '55살 가로수의 푸른 꿈'은 청주의 플라터너스 가로수길 보전을 위한 노력과 이이기를 담은 기사이다. '보전과 개발, 상생안 찾은 원흥이 방죽'은 청주 산남동의 두꺼비생태보전활동의 성과를 다룬 기사이다. '젊음, 백두대간 품에 안기다'는 충북지역에서 오랫동안 추진해 온 백두대간 종합탐사의 내용을, '세종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환경적 측면에서 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원안대로 추진되어야 하는지를 다룬 기사이다. '30년 갈등 문장대온천 이제는 풀어야'는 충북지역의 가장 오래된 현안이라 할 수 있는 문장대용화온천개발 반대운동을 다룬 기사이다. '강과 도로가 제자리를 찾아갈 때'는 청주의 무심천 하상도로 100일간의 실험을 다룬 기사이다. '미호종개야 돌아와'는 미호강 물환경 개선과 생태계 보전활동을 담은 기사이며, '2022년 물을 지킨 영웅들'은 SBS 물환경대상을 수상한 미호강 상생협력 프로젝트의 활동 성과를 담은 기사이다.

'함께 사는 길'은 환경활동가들의 책꽂이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소장용 기념품이다. 활동가들의 교과서이며 정보자료 획득의 원천이었고 소통과 홍보의 유용한 수단이었다. 환경운동연합 지역조직들에게는 자립재정 실현을 위한 회비 수납의 유력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이 고마운 간행물을 두고 때론 제작비용 충당의 어려움 때문에 또는 종이매체에 대한 견해 차이 등으로 인해 치열한 논쟁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환경운동의 30년을 함께 버텨왔다.

이번 달에도 나의 책상에는 친숙한 우편물이 도착해 있었다. 책자 속에 편지글이 있었다. '안타까운 소식 전합니다. 2024년 1월호(376호)를 마지막으로 종간하게 되었습니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서른 해가 넘는 동안 매월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왔지만, 발행 부수가 줄어들면서 오랫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고 대책을 마련하려 노력하였지만 누적되는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부득이 폐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오랫동안 집념 하나로 '함께 사는 길'을 발행해 온 박현철 주간과 이성수 기자의 글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너와 함께 걸었다, 눈 녹아 발자국 지워진대도 해도 우리의 동행의 기억 저 봄에 새눈으로 피리라'는 내용이다. '함께 사는 길' 전권은 ecoview.or.kr을 통해 온라인으로 계속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의 변화와 진화 속에서 환경운동은 과연 어떤 대중매체를 새롭게 발굴할 수 있을지,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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