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병연 수필가

'신선들도 머물다 간다'는 산간벽지 탑선(塔仙)리 고향집 사랑채는 중2때 지었으니까, 그 기억이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어제 같다. 농고를 갓 졸업한 큰 형과 작은형 그리고 나! 우리 3형제는 뒷산에 가서 곡괭이와 삽으로 흙을 파서 바지게에 싣고 등짐으로 나흘을 나르니 동산과 같이 쌓였다. 한 무더기씩 떼어내 물을 붓고 작두로 자른 짚을 넣고 발로 밟아서 이겨서 흙벽돌을 만들었다. 짚과 흙을 함께 밟으려니 발바닥이 '따끔따끔'한 감촉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사각형 틀에 넣어 벽돌을 만들어 마당에 널어놓아 일주일 정도 말려서 황토벽을 쌓으니 바위와 같이 단단하였다. 형님들이 눈살미로 얻어 들은 목수(木手) 일이라서 서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렇게 마련된 사랑방은 마을 처녀총각들에겐 아주 요긴하였다. 저녁만 되면 윷놀이나 화투치기로 '모듬 밥내기'하노라면 겨울밤이 지새는 줄을 몰랐다. 단골 애창곡인 '물방아도는 내력, 앵두나무 처녀'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지난해에는 그 황토벽 공간에 '그림봉사'하는 고마운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면서, '문구 하나를 넣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류시화 시(詩)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란 제목을 썼더니, 사람들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글귀가 맘에 든다."며 기념촬영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하늘과 물'은 우리의 본마음을 비유(比喩)한 것이리라. 물속에는 흙탕물만 있는 게 아니라 밝은 거울과 같은 명경지수(明鏡止水)가 있으며, 미세먼지나 구름으로 덮여진 하늘에 뒤편에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푸른 하늘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명경지수'나 '청정무구'한 '물과 하늘'과 같이 밝고맑은 순수한 '영혼'이 있다.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그대'는 과연 누구일까!? 이 질문에 우리 모두는 집중해야 한다. 무명(無明)의 구름에 휩싸인 중생들은 내 안에 있는 광명(光明)의 에너지를 꺼내 쓰지 못해서 헛고생하고 있다. 그래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다. 우리가 찾고 있는 그대(본마음)를 참마음, 진여(眞如), 영성(靈性), 불성(佛性)이라고 하지만, 그 자체는 아니고 손가락(직지(直指)으로 가리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서 유네스코문화유산인 '직지(直指)'는, 우리고장 청주의 자부심이자 브랜드가 되었다. 그 본명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인데, "백운화상이라는 큰스님이 가려 뽑은(초록抄錄), 역대 부처님과 큰스님들(불조佛祖)이 설명한, 직지심체의 핵심내용"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구절이 '직지(直指)심체(心體)'인데, '직지(直指)'란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킨다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고, '심체(心體)'란 마음의 본체를 봐서 성불한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지칭한다.

서구 지성인들은 '영성(靈性)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탈피하여 개개인의 내면 안에 존재한 영성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그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영성이란, 모든 창조물의 에너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개개인의 내면에 존재한 숭고한 에너지가 외부 에너지와의 상호작용함으로써 위대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마음공부하기로 발심(發心)하였다. 인생이란 공부를 통하여 가능성이 열리며 운명도 바꿀 수 있다. 마음공부 절차로서 '삼아(三我)'가 있다. 즉, 구아(求我: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증아(證我: 내가 나를 깨닫는 공부), 용아(用我:내가 나를 쓰는 공부)가 그것이다. 그런데 마음공부는 오직 '내 마음'으로만 할 수 있다.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찾고(求我),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깨닫고(證我),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쓰는(用我) 것이다.

김병연 수필가
김병연 수필가

세속을 떠난다는 속리산!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을 지나면 '시심마교(是甚麽橋: 이뭣꼬다리)'가 나온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줄여서 '이뭣꼬'라고 한다. 선가(禪家)에서는 대표적 화두(話頭)로 사용하고 있다. 갑진(甲辰)년 새해에는 직지(直指)인심(人心)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발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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