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S시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자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명절 연휴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긴 통화로 이어졌다. 설 명절 전부터 삐걱대던 나의 몸 상태를 알고 있던 친구는 내 목소리부터 살피며 걱정했다고 한다.

"그랬었구나 고마워. 손이 많이 가는 만두는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뭐든지 잘하는 솜씨 좋은 지인이 만두소를 넉넉하게 만들어 두었으니 먹을 만큼 빚어가라고 해서 그걸로 해결했고, 떡만둣국 끓일 사골 국물도 이웃이 나눠 주어서 잘 먹었어. 그러고 보니 올해 명절은 주변 사람들의 넉넉한 나눔으로 고맙게 보냈네."

친구는 다행이라며 우리 나이에는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다시 한번 통화 끝에 남겼다.

주방 용품 가운데서 내가 가장 자주 사들이고 교체하는 것은 설거지 때 사용하는 수세미다. 수세미는 세균 번식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주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싱크대 서랍장 안에는 항상 수세미가 떨어지지 않게 마련되어 있다. 오늘도 수세미 교체를 위해 싱크대 서랍을 열었더니 진한 보라색 수세미가 확 눈에 들어온다. H여사님의 작품이다. 세제를 묻힌 수세미에서 몽글몽글 일어나는 거품이 마치 여사님의 동글동글한 얼굴에 피어나는 환한 웃음 같다.

체육관 관리를 해 주고 있는 H여사는 늘 손에서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모자도 뜨고 조끼도 뜨고 가방도 뜬다. 부지런한 그녀가 어느 날 커다란 비닐봉지 가득히 뜨개질 한 수세미를 담아왔다. 체육관을 사용하는 배드민턴 회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각 클럽마다 회원 수 대로 준비했다면 몇 백 개를 뜨개질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이라고 하나하나 낱개 포장으로 모양새까지 갖추었다. 그 많은 양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일이 걸렸을 것인데 정성과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게 재미있어요. 나이 들어가면서 내 재주를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는 것도 재미있고, 뜨개질 주문받아서 생긴 돈은 모아뒀다가 연말에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는 것도 정말 보람 있거든요."

재료비도 많이 들었을 텐데 낱개 포장까지 하셨냐는 나의 감사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우리 성당의 Y자매가 생각났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궂은일에 앞장서는 Y자매님의 취미는 퀼트다.

퀼트는 이불이나 가방, 쿠션 등에 누비질을 하여 무늬를 두드러지게 만든 것을 말한다. 취미라고는 하지만 그 수준은 취미를 넘어서 전문가의 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수공예품의 높은 가치를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만든 가방을 선물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방이 완성될 때까지 가방 주인이 될 사람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바느질했다고 하니 더욱 큰 감동이었다. 그녀의 핸드폰 사진첩에는 그동안 만들었던 많은 작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손재주라고는 무엇 하나 없이 꽝인 나는 그저 부러웠다. 그동안 힘들게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많은 작품들을 전시도 하고 팔기도 한다면 대박이겠다는 사람들의 권유에 "나는 바보라서 그런 거 계산할 줄 몰라요. 그리고 사진 속에만 남아있지 모두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서 나한테는 남아있는 것이 없어. 그저 내가 만든 것을 잘 사용해 주면 그게 보기 좋은 거지"라며 겸손해하신다. 착하고 겸손한 삶보다 하나도 손해를 안 보겠다는 영악함이 두드러지는 시대에 자기의 애정이 깃든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보통일이 아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나눔은 내게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필요한 것을 나눠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나눔은 곧 선물이고 선물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도 나는 이웃들과의 나눔을 기억하며 '우리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눔'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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