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건 어떤 이유로든 여간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의 바람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선배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차게 불어오는 회오리바람 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두 집 살림하는 뻔뻔한 남자의 이중생활이 꽤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바람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야. 바람이 내게 불어 올 땐 느낄 수 있지만, 지나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바람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난 끝까지 내 자리 지킬 거다.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히고 나면, 어이쿠! 정신 차리고 되어있어. 제 자리 찾아오면, 그땐 꼼짝 못하게 혼쭐 내 줄 거야."고난과 역경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일상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데, 의연하게 잘도 버틴다. 이제 아이들은 시집 장가를 갔고, 늘그막에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그 때 불었던 바람은 정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일 뿐 이었을까? 하지만 몰래한 사랑을 즐기던 그 끝에는 피눈물 나는 인과응보가 있다. 허투루 소비한 그 에너지는 건강을 잃게 된 벌을 받았다. 인생은 참 공평하다.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농촌에서 사는 또 다른 유(類의) 두 집 살림을 하는 언니가 있다. 꽃도 가꾸고 농사도 하는'5도 2농(五都二農)'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열 한 가구 중 아홉 가구가 자연부락을 이루어, 주말이면 고단한 도시생활의 피로를 내려놓는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작은 농촌마을을 디자인 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던 고향을 그리워하다 새로 시작한 농부의 두 집 살림은 만족함으로 가득 채운다.

이백 여 그루 소나무를 키우고 가꾸는 나에게 그들은 작은 불씨를 던졌다. 때마침 도시농업관리사 교육을 받고 있는 중에 치유농업이시사하는 바 마음이 뜨거워진다.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에 나도 두 집 살림을 준비 해야겠다.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걸으며 건강을 챙기고 쉼을 얻을 수 있는, 솔향기 나는 황토길 족욕체험 치유농장이다. 낮에는 피톤치드 향기를 마시며 솔 숲 길을 걷고, 밤에는 별을 보며 걸을 수 있는 맨발 길 말이다.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도 에너지를 채우며 잠시 피곤을 풀고 쉬어갈 수 있는 오솔길을 만들고 싶다. 그 꿈을 이룰 때까지 꿈은 나를 성장시키고,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채워줄 것이다. 오늘 밤은 별 총총 쏟아지는 황홀경 속에서 맨발 길을 걷는 행복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119가 다녀간 거실 바닥엔 점점이 핏방울이 튄 자욱이 바짝 말라있었다. 응급한 상황을 이야기 하듯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다.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갔다가 경황 중에 장례까지 치르고 난 후, 뒤 늦은 친정집 방문이다. 그토록 애착 하시던 아버지의 소중한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홀로 되신 엄마를 모셔왔다. 가까이 엄마가 계실 거처를 마련해, 졸지에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의 필요를 채워드려야 할 소소한 일거리로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엄마의 문갑 위에는 흑백과 총천연색 사진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무질서하게 줄지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찍은 약혼사진부터 손주들까지, 순간순간 그들을 만나며 시간여행을 하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픈 엄마의 마음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게다. 팔십 평생 세월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처절한 그리움을 달래는 사진보기다. 언뜻언뜻 보이는 젊은 날 어여쁜 모습을 보며, 촉박한 시간의 마지막을 매 순간 정리하시는 것 같다. 두 집 살림하는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그 날이 도적 같이 올 수 있다. 전화 끝에 늘"사랑한다." 말씀하시는 엄마와"네"하고 단답으로 일관하는 뚝뚝한 딸이다. 너무 늦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쑥스럽지만 진심을 담은 사랑의 화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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