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심이 남긴 참혹한 자연 파괴 현장

금강 상류의 비경 천반산과 죽도.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금강 본류와 만나 '내륙의 섬 죽도'를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죽도로 이어진 바위절벽이 인위적으로 잘려져 나가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김성식
금강 상류의 비경 천반산과 죽도.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금강 본류와 만나 '내륙의 섬 죽도'를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죽도로 이어진 바위절벽이 인위적으로 잘려져 나가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김성식

 

비경 속 '옥의 티'… 알고 보니 기막힌 사연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금강의 용담호 상류에 이런 곳이 있다. 전북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내송마을 남쪽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면 구량천 건너편으로 천반산 자락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천반산을 중심으로 독특한 감입곡류지형을 이루고 있어 진안·무주권 지질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해 진안군 동향면을 거친 구량천(금강 제1지류)이 금강 본류와 만나 '내륙의 섬 죽도'를 한바탕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길을 잡아끈다. 구량천이 천반산 끝자락을 굽이감은 뒤 다시 죽도를 휘감아 돌려고 하는 지점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인다. 그곳만 이어져 있으면 거꾸로 된 한반도 지형을 연상케 하는 천반산 자락과 죽도를 연이어 휘감으며 굽이치는 구량천 모습이 더욱 기막힌 경관을 보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러한 아쉬움은 어색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이 사람 손에 의해 의도적으로 잘려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큰 실망감에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아니 이럴 수가!"
 

 

농경지 개간 명목 무모한 바위절벽 폭파

폭파된 죽도 병풍바위. 농경지를 만들겠다는 한 사람의 헛된 욕망 때문에 폭파된 채 '절경 아닌 절경'으로 남아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김성식
폭파된 죽도 병풍바위. 농경지를 만들겠다는 한 사람의 헛된 욕망 때문에 폭파된 채 '절경 아닌 절경'으로 남아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김성식

예부터 산죽(山竹)이 많아 죽도(竹島)로 불린 이곳은 구량천과 금강이 교묘하게 만나 오메가(Ω) 형으로 휘감아 도는 특수한 지형이다. 육지로 이어진 좁고 날카로운 바위절벽(오메가의 목 부분)을 제외하고는 둘레가 대부분 하천으로 둘러싸인 섬 아닌 섬이었다.

죽도와 육지를 잇는 좁고 긴 바위절벽을 사람들은 병풍 같다고 하여 병풍바위로 부르거나 닭벼슬을 닮았다 하여 벼슬바위라고 불렀다. 공교롭게도 이 절벽의 너비가 너무 좁았던 게 인간의 탐욕을 불러왔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1970년대 개발 붐이 한창일 때 이 지방에 살던 노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지역을 직강(直江) 공사를 통해 농경지로 개간하고자 했다. 그는 병풍바위를 발파·절개하여 냇물을 직접 하류로 흐르게 하면 나머지 하천 부지가 농경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결과 지금의 폭포가 만들어졌으나, 당초 목표했던 농경지 조성에는 실패했다.

당시 이 업자는 병풍바위를 폭파·절개해 물길을 바꾼 후 물이 흐르지 않게 되는 하천 부지를 농경지로 개간하려 했지만 하천 바닥을 채울 흙과 사업비가 없어 공사를 중단한 채 방치하게 됐다고 전한다. 한 사람의 헛된 욕망 때문에 애먼 바위절벽만 참혹하게 잘린 채 아픈 상처로 남게 된 것이다. 오메가 형의 섬 아닌 섬이었던 죽도는 이후 지도상으로도 하천으로 둘러싸인 실제 섬이 됐다. 

 

잊히고 있는 복구 불능의 상처

잘린 병풍바위에 지금도 남아 있는 폭파 당시의 폭약 구멍. /김성식
잘린 병풍바위에 지금도 남아 있는 폭파 당시의 폭약 구멍. /김성식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속사정은 점차 잊히는 상황이다. 죽도를 육지와 이어줬던 오메가의 목 부분이 사람 손에 잘림으로써 실제로 섬이 된 속내를 기억하는 주민들도 극소수다. 현장에는 폭포가 왜 생겨났고 바위 절벽이 왜 칼로 무 자른 것처럼 반듯한 절단면을 갖게 됐는지 설명하는 안내문도 없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저 깎아 세운 듯한 바위 절벽과 그 사이로 보이는 용담호 상류를 바라보며 기이한 경치를 즐길 뿐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다시는 이러한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의구심을 제기한다. 당시 병풍바위를 폭파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1970년대라고 하지만 작은 도랑도 아니고 지자체가 관리하는 하천을 개인이 나서서 물길을 돌리고 농경지를 만들겠다고 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또 당국의 허가를 얻었다고 하지만 이런 엄청난 일을 그 어떤 기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허가를 내줬을까도 의문이다. 이 일을 주도했다가 자연만 파괴한 채 사업을 포기한 당사자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도 궁금하다.

기자는 34년 전인 1990년 이곳을 처음 답사한 후 이런 글을 남겼다. "절경을 이루는 자연도 인간의 욕망 앞에 어쩔 수 없이 물줄기를 틀어 흐르고 있다. 강바닥을 농경지로 만들기 위해 수십 미터 바위 절벽을 서슴없이 폭파하고는 하천 바닥을 채울 흙과 사업비가 없다는 이유로 공사를 중단한 채 방치한 비인간적인 행동에 말문이 막힌다. 당사자는 사업 실패로 끝났겠지만 자연은 복구 불능이란 크나큰 상처를 안게 됐으니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잘린 병풍바위(죽도폭포) 가는 길

금강 상류의 진안 죽도는 현재 금강과 구량천으로 둘러싸인 섬이 돼 있다. 
금강 상류의 진안 죽도는 현재 금강과 구량천으로 둘러싸인 섬이 돼 있다. 

용담댐이 들어서기 전엔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죽도마을 쪽에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이곳은 현재 댐 수위가 낮아져야만 접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해서 구량천 상류로 조금 올라가 진안군 동향면 장전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강바닥으로 난 비포장 길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길이 예전엔 1960~70년대 시골길 같았는데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강변으로 난 길이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라 여기저기 진흙탕 구간이 있어 애를 먹었다. 자갈길을 지날 때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가끔 차 밑바닥으로 돌이 스칠 때면 마치 공사장의 중장비가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가까스로 도착한 병풍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색하다. 직각으로 잘린 병풍바위 위에는 소나무가 불안하게 서 있다. 예전보다 줄기가 굵어졌지만 불안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절단면에는 폭파할 때 뚫었던 폭약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아찔한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병풍바위 폭파로 인해 졸지에 생겨난 폭포는 죽도폭포로 불리며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용담댐 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낙폭이 줄어들고 접근이 어렵게 되자 유명무실하게 됐다. 

현장에서 바라보는 병풍바위는 그 어색함만큼이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병풍바위의 깊은 상처가 가슴을 후벼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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