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드락] 조영의 수필가

살이 찌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엉뚱한 내 질문에 눈빛이 밝아졌다. 즉답으로 말하기도 하고, 지인의 일로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이러지 않을까 상상으로 말하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담이 쏟아졌다. 말수가 적고 잘 들어주기만 하던 B 선생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멈칫멈칫 하다가 중간에 말을 채간 사람으로 기회를 놓쳤다. 눈치 빠른 옆 사람이 그의 손을 들어주어 시선이 쏠렸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되묻자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허리 사이즈가 작은 바지를 삽니다. 이유를 알겠다는 듯 모두 손뼉을 쳤다. 맞다, 맞아요. 지금까지 대답은 살이 찐 몸에 맞는 걸로 바꾼다거나 몸매를 가려줄 새 옷을 산다던가, 장신구로 시선을 끌게 하고 다이어트 식품이나 운동을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그녀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감추고 싶은 절망에서 드러내어 변화시켜 보자는 생각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여자들에게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라는 말처럼 다이어트는 숙명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중년 이후 갱년기를 보내면서 몸의 변화는 대부분 겪은 일이기에 다이어트 이야기로 즐겁게 놀았다. 얼마 후 내게 질문이 다시 왔다.

선생님은 무엇을 먼저 하나요? 질문한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인 듯하다. 사실 그랬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살이 찌고 있다는 것은 알았고 빼야지 다짐은 했지만 생각뿐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헬스장이 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다가 바지 입을 때면 살을 빼야지 다짐하고는 했다. 갑상선암이 의심된다며 추적 검사를 시작한 지 몇 년이다. 그때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치유되지 않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 그리고 갱년기와 겹치면서 몸도 마음도 변했다.

요즘은 왼쪽 손 약지가 아프다. 예전에도 다른 손가락이 아프다가 괜찮아 지기를 몇 번 경험했기에 그러다가 낫겠지 하면서 잊었다. 통증은 전보다 아팠지만 병원 가기는 귀찮았다. 오른손보다 왼손을 많이 쓰는 습관을 탓하기도 했다. 우리 집은 음력 1월에 제사가 몰려있어 쉴 틈이 없다. 일하는 낮에는 모르는데 밤이 되면 통증이 심했다. 자세히 보니 퉁퉁 부어서 마디가 사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 몸에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던 반지가 손가락을 조이고 있었다. 반지 때문에 통증이 더 심한 건지, 부어서 반지가 꽉 조이는 건지 몰라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빼보려고 해보았지만 통증만 심하고 손가락은 더 부어올랐다. 기다리기로 했다. 부기가 빠지면 빼야지, 아픈 손가락 마사지하는 내게 남편은 미련하다며 외면한다.

반지는 나에게 의미가 깊다. 결혼반지로 받은 14K 링 반지를 닳도록 끼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남편은 큰맘 먹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반지를 사주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반지 같지만 운전할 때 우연히 햇빛에 반사된 보석의 빛들이 둥그렇게 차 안에서 움직이면 순간의 희열, 그 짜릿함의 온도는 나만 알고 있는 행복한 기억이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손자 첫돌이 다가온다. 예쁜 반지를 사려고 주얼리샵에 들렀다. 그런데 돌반지는 관심 없고 손가락 고통만 말하자 반지 절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잃는 것은 아쉽지만 미련한 마음이 바뀌면 가족의 걱정은 덜어줄 것이다. 톱이 반지에 닿고 긴장도 잠시, 오래 정든 연을 끊어 놓았다. 대신 반지 낀 자리에 골처럼 패인 흔적의 반지를 얻었다.

살이 찌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내 대답은 반지부터 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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