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 중에 널리 알려진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이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인데, 희미한 기억으로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교과 과정으로 필수처럼 읽어야 했던 소설이던 것 같다. 그만큼 유명한 소설이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 또래 동급생 아이들이 생각 없이 서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놀리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큰 바위 얼굴』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마을에 사람 얼굴로 된 큰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의 신기한 모습만큼이나 전설이 전해져온다. 언젠가 그 마을에 위대한 리더가 나타나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저 큰 바위 얼굴과 같을 것이다 라는 전설이다.

사람들이 오래 기다려온 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그 큰 바위 얼굴에 비견될만한 리더들이 등장한다. 부자가 등장하고, 장군이 등장하고, 그리고 정치가가 등장한다. 한 명 한 명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대단한 리더들인데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큰 바위 얼굴을 닮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을에서 나서 자란 소년이 계속 그 큰 바위 얼굴만 바라보고 그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살다가, 마침내 그 자신 스스로가 큰 바위 얼굴을 닮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수 년 전에 이 『큰 바위 얼굴』 소설을 우연히 다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전에 주목해 보지 않은 마지막 대목에 이런 문장 하나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갔다. 그는 여전히 그보다 더 현명하고 더 선량한 사람이 나타나 큰 바위 얼굴을 닮으리라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이 그냥 얼굴 똑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소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이 소설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이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부를 손에 쥔 리더도 아니고, 큰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 리더도 아니고, 현명하고 선량한 사람 냄새 나는 리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대목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나도 그들과 같이 늘 사람 냄새 나는 리더를 기다리고 바라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많이 쓰기 시작한 말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된 사건으로 서울 홍대에 있는 '진짜 파스타'라는 파스타 집을 거론한다. 이 가게 사장님이 어느 날 구청에 갔다가 결식아동카드라는 게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결식아동카드는 결식아동들이 하루에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매일 하루 오천 원의 식대를 지급해주는 카드다. 이 파스타 사장님이 결식아동카드를 보고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까, 그리고 오천 원을 가지고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그것도 잘 먹고 잘 커야 할 아이들이 뭘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파스타 집에 오는 결식아동들에게 언제든지 전 메뉴를 무상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 사장님의 결정과 실천이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결식아동 돕기에 참여하겠다는 기업, 식당, 카페들이 줄줄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리고 사람들이 가게에 찾아가서 흔히 말하는 '돈쭐 내주는' 일들이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다른 곳곳에서 사람들이 여러 모양으로 선한 영향력 바람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 파스타 사장님에게 어떻게 그런 선한 영향력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사람냄새 때문이었다는 인상 깊은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자기가 뛰어놀던 동네에서 경험한 사람냄새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던 형 누나들, 목말라서 찾아간 이웃집에서 먹은 물 한잔, 정자에서 사탕 주시던 할머니, 간식 챙겨주던 구둣방 할아버지, 이런 어렸을 때 경험한 따뜻한 사람 냄새가 오늘 자신의 선행을 결정하게 해준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그 사람 냄새가 그립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이 세상이 그 사람 냄새로 가득하면 좋겠다. 그래서 따뜻한 사람 냄새 맡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가 서로 서로를 붙들고 품어주며 웃음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 참 어려운 이 세상에 그렇게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가득하길 오늘도 기다리고 바라보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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