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병부 전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헤어지면 그리웁고 /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것 이내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누가먼저 말했든가/ 아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청춘/

아버지는 술 한잔 드시면 "청춘고백"이란 흘러간 옛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50대 후반을 넘긴 초로(初老)의 아버지는 '헤어지면 그리웁고'란 슬픈 옛이야기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단조(短調)풍인 아버지의 노래에 어린 나는 왜 한없는 애수를 느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아버지의 18번 노래가 너무나 슬프게 들려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던 아버지는 거나하시면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릴 적 내가 듣던 아버지의 노래는 '황성옛터', '유정천리' 이런 것들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가사의 의미는 몰랐지만 뭔가 아버지의 표정에서 슬픈 사연을 느꼈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18번 '청춘고백'을 종종 즐겨 부르고 있다.

아버지는 1931년 신미년 2월에, 재 넘어 바닷가 적형적인 시골마을에서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 않은 곳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리고 7세 되던 해 자식이 없던 작은 할머니한테 양자를 오셨지만 정성 어린 봉친(奉親)으로 암야(暗夜)의 등불이 되기도 하였다.

한창 어리광도 부리고 말썽도 피울 7살 나이에 아버지는 새로운 어머니를 맞아 들였지만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였고, 전쟁을 겪으며 격동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셨다.

그 후 16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어머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7남매를 두셨다.

가난을 뼈저리게 느끼셨는지 공부 아니면 내가 출세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고 열심히 공부하셔서 27세에 인천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국토 건설단에도 입대하여 군 복무도 마치셨고, 일찍이 문맹퇴치(文盲退治), 마을 리장(里長) 일을 보시면서 새마을 사업 등을 주도적(主導的)으로 추진하여 현재의 마을안길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면 우체국과 남면 농협에도 근무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말씀이 없었고 자식들을 항상 믿었기에 우리들을 돌보시는 일에는 별로 시간을 갖지 못하셨다.

어렸을 당시만 해도 얼마나 직장 일에 바쁘셨는지 우리를 돌보시는 일에는 인색하셨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 가정환경을 조사하면 아버지의 직업이 농업이라고 적었는데 그리 남들 앞에서 자랑할 거리는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1988년 3월에 58세가 되던 해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셨다.

구급차에 실려 천안 순천향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사경을 헤매셨고, 의사 선생님은 이 병은 미국에 가도 못 고치고, 소련에 가도 고칠 수 없는 병이니 빨리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하였다.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돌아 가셨으니 벌써 3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때 내 나이는 36세였으며 결혼 한지 7년차가 되던 해였다.

아버지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많은 일을 하시고, 이 세상을 떠나가신 분이셨다. 좌우명은 수신제가(修身齊家)이셨고, 성품은 의로운 일에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하시는 곧은 성품이셨다.

어려서부터 많이 참고 견디어 오신 강인한 인내심과 본인으로 하여금 가족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아야 겠다는 신념이 강하셨다.

특히 일찍 작고하신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카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늘 걱정이 많으셨다.

세월이 빠르게 흘렀지만 여전히 아버지만 생각하면 늘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최병부 전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최병부 전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살 만한 정도는 남겨 주셨다.

'수신제가'하라고 써 주신 아버지의 친필을 항상 바라보면서, 가정을 잘 지켜야겠다.

오늘도 나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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