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형 석기 아닌 '土器'가 촉매제 역할

국립 목포대 이헌종 교수 논문

구석기가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도래한데는 '토기' 가 결정적으로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구-신석기 전환기 이론과 관련, 종래 학설과 사뭇 다른 차원의 논리 전개여서 국내 선사고고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신석기 시대 토기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정착생활을 해야 이런 토기를 만들 수 있다. V자형 그릇은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 국립 목포대 이헌종(46) 교수는 한국 신석기학회 최근호에 '동북 아시아의 후기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과도기의 해체 과정과 통합의 제현상' 논문을 발표했다.이 교수는 러시아에서 선사고고학은 전공한 소장 학자로, 이융조 명예교수의 충북 선사고고학계와도 학문·인간적인 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논문에 따르면 동북 아시아의 1만4천년 이전은 이른바 후기 갱신세로, 지구상 마지막으로 가장 추운 시기였던 'LGM'(Last Glacial Maximum)에 해당하고 있다.그러나 '홀로세'(1만4천년)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 지역성 강한 문화 등장과 동물들의 북방이동 등 전과 다른 문화·생태적 현상이 나타났다.그리고 석기문화와 관련해서는 좀돌날몸돌, 좀돌날 등으로 불리우는 세형(細形) 석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형석기는 바이칼·알타이 지역의 2만5천년된 지층에서 나타나기 시작, 동북아에서는 1만5천~1만4천년 지층에서 출현하고 있다.타제석기(뗀 석기)의 일종인 이 석기는 단순히 크기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이를 다른 매개물(예 나무창)에 접합해 사용했다는 점에서 인류 사고 능력이 진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 교수는 "고인류가 구석기 시대를 끝내고 신석기 시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들 세형석기보다는 토기가 보다 중추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주장, 국내 선사 고고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이 교수는 그 근거로 ▶당시 토기가 저장용이 아닌, 조리용으로 사용된 점 ▶토기의 등장이 어로(漁撈)의 시작과 거의 같게 나타나는 점 등을 들었다.그는 "후기 구석기 사람들은 돌그릇과 나무그릇을 저장용 용기로 사용했다"며 "그러나 신석기 초기에 등장한 토기는 단순 저장용을 넘어, 끓이고 굽고 삶는 조리용 용기로 사용됐다"고 밝혔다.이와함께 "일부 지역에서는 토기와 함께 물고기뼈, 이빨 등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며 "이는 물고기를 잡은 후 토기를 이용해 조리를 한 흔적"이라고 밝혔다.그는 결론은 ▶흙으로 토기를 빗다보니 정착생활을 하게 됐고 ▶이는 수렵·채집경제에서 어로·정착경제로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이같은 문화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 구석기 말기가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혔다.이와함께 "세형석기와 토기는 거의 동시에 출현, 신석기시대로의 전환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하게 된데는 토기가 '문화핵심'(culture core)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신석기 시대

약 1만5천년전,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양극지방을 비롯한 빙하권 내와 높은 산 위에 두텁게 쌓여 있던 얼음이 녹아 흘러 바닷물의 높이가 100m 이상 상승하게 됐다.

이에따라 빙하시절 육지로 연결됐던 중국대륙과 일본 큐슈 사이에 황해와 대한해협이 만들어짐으로써 동북아시아는 현재와 같은 반도적 지형을 갖추게 됐다. 또한 툰드라지역이었던 곳은 산림지대로 바뀌고 기후는 온대성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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