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 / 청원고 교감

고려대가 정시 일반전형 정원의 50%를 수능 성적만으로 뽑는 '우선선발제'를 도입하는 등 다수의 서울 소재 사립대학들이 수능시험 비중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내신, 수능, 통합논술을 모두 잘 해야 한다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일컬어지는 2008 대입제도 하에서 일부 대학의 수능 '우선선발제' 도입은 수능 성적만 뛰어날 경우에는 굳이 내신이 떨어지거나 논술을 보지 않고도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러나 학생들과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일단 숨통은 트였지만 어느 쪽에 더 집중하여 승부를 걸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마다 다양한 전형방식에 대한 새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학교에서는 학생 개인의 내신과 수능, 논술 예상점수들을 따져보고 맞춤형 진학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부담이 늘어날 것이고, 당장 수능 하나에 올인하려는 학생들이 입시 전문학원으로 몰려 갈 것이 뻔하다.

게다가 주로 삼수생 이상 또는 고졸 검정고시생들에게 적용해 왔던 '비교내신제'를 이른바 '고4생(재수생과 대학 재학 중 입시에 재도전하는 반수생)에게도 적용키로 하는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재수와 반수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학원가는 바빠졌다.

'비교내신제'는 고졸검정고시를 치른 학생처럼 학교생활기록부로 전형하기 어려울 때 수능성적과 연동해 산출한 점수를 내신으로 활용하거나 학생부에 따른 내신과 수능에 따른 비교내신 점수 중에 유리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를 확대할 경우 사실상 '수능을 다시보자'는 재수와 반수를 장려하는 격이 된다.

수능 '우선선발제'나 '비교내신제' 확대는 결국 고등학교 교육을 입시에 종속시킴으로써 학교교육의 파행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굳이 내신이 떨어지거나 논술을 보지 않고도 수능시험만 잘 보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데 누가 힘들게 학교 공부를 할 것이며 통합논술을 준비하겠는가. 이런 상황에 학교에서 "다양한 방과후 활동이나 인성교육에 충실하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더구나 수능 성적에 비해 내신 성적이 떨어지는 재수생들에게 유리한 '비교내신제'를 적용함으로써 정상적인 고3 재학생들만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재수생은 수능만 열심히 하면 되고, 재학생은 수능과 내신에다 논술까지 다 잘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는 무책임한 대학의 횡포이자 '대입반란'이다.

물론 대학은 대학에게 맡겨야 한다든가, 교육 실상과는 달리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 시대착오적인 교육평등주의에 젖은 청와대 코드에 맞춘 교육부가 문제였음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합리성도 일관성도 없는 정부와 대학의 정책 때문에 정작 등터지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공교육 내실을 염원하는 일선 고등학교다.

대학이 '논술, 구술은 세계적 화두'라며 호들갑 떨더니 이제 와서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니 어찌 된 일인가.

따라서 대학들의 이런 '대입반란'은 돈 많은 사설 학원들이 서울 주요 대학들에 압력을 행사했거나 로비를 받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인삼각(二人三脚)'이라는 경기가 있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게임이지만 웬만큼 호흡이 잘 맞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인 협동경기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입시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가 짝을 이루어 벌이는 '이인삼각' 경기 같다. 키나 보폭 모두 제각각인 둘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조심스럽게 구령에 맞춰 어떻게든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멀고 먼 레이스다. 뛰다가 걷다가 박자가 엇갈려 필요하면 잠깐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고 보폭을 맞춘 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야 한다.

이인삼각에서 두 다리를 끈으로 적당하게 묶은 채 서로 배려해야만 잘 뛸 수 있다는 점을 공교육과 대학은 배워야 한다. 이인삼각과도 같은 대학과 공교육은 모두 한 발만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대학 저마다 우수학생을 독점하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대학은 자기만 '살아남기'위해 공교육을 혼란시켜서는 안 되며, 우리 사회에 재수가 장려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라도 대학은 이인삼각 게임의 법칙을 배워 '대학과 공교육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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