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석 넓은 공간 쉽게 오를 수 있어

▲ 우암 송시열 선생이 화양구곡 제 5곡인 '첨성대'(사진)에서 실제 천문관측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북대 이용삼교수 주장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화양구곡 제 5곡인 첨성대에서 실제 천문관측 행위를 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따라 인근 청소년 수련장 등과 연계, 일대를 전통과학 체험장과 별자리 관측 장소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북대(총장 임동철)는 지난달 30일 우암연구소 개관, 이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학내 개신문화관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충북대 이용삼(천문우주학과) 교수가 '우암의 천문의와 화양구곡 첨성대에 대한 고찰'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우암이 말년에 칩거한 화양구곡(華陽九曲)에는 화양천 3㎞를 따라 제 1곡 경천벽,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천 등의 구곡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제 5곡인 첨성대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우암 선생이 실제 천문관측을 했을 것이다", "아니다. 실제 관측보다는 바위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등의 논쟁이 존재했다.

혼천의를 복원한 바 있는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일대 지형을 정밀 분석하고 또 가상실험을 다양하게 해본 결과, 실제 천문관측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그는 그 근거로 ▶상단석에 7~8명이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넉넉한 공간이 있고 ▶상~중단석의 높이차는 1.9m로 사다리를 이용하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점 등을 제시했다.

이밖에 ▶시야가 매우 넓게 확보되면서 일출·일몰은 물론 유성의 관측도 가능하고 ▶또 바위에 '첨성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점을 들었다.

조선시대에는 별자리 등을 관측하던 장소를 주로 '간의대'(簡儀臺) 또는 '관천대'(觀天臺)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암은 이곳 거대석 이름을 '첨성대'로 명명했다.

이 교수는 "실제 첨성대 상당에 올라 태양 그림자를 이용해 지형과 방위를 측정한 결과, 매우 손쉬운 관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우암은 첨성대에서 400m 정도 떨어진 암서재(도유형문화재 제 175호)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이곳에 올라 천문을 관측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화양구곡 첨성대는 자연석으로 이뤄진 탑모양 바위이기는 하나 원통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등 그 모양이 경주 첨성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며 "때문에 이것이 작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상에서 보듯 화양구곡 첨성대에서는 우암의 천문관측 행위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며 "일대를 주변 청소년 수련장 등과 연계, 전통과학과 별자리 관측 명소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정만조(국민대), 서대원(원광대) 등도 등단, '우암 송시열과 화양동 사원', '우암 송시열 선생의 이학연구에 대한 일고찰'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조선 유학자와 천문관측

조선시대에는 유학자가 배워야 할 기초학문을 '격물'(格物)이라고 불렀다. 이 격물에는 천문학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우암뿐만 아니라 이황, 홍대용 등도 혼천의를 제작한 것으로 사료는 전하고 있다.

이처럼 천문학이 천문학이 유난히 강조된 것은 이를 통해 자연의 道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의 기원은 중국 순임금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서경은 '순임금이 선기옥형(혼천의)을 만들어 해와 달을 관측했다'고 쓰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