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무불상 복장유물로 사용된 듯
이같은 정황은 ▶어떤 사찰이 불사(佛事)를 하면서 소나무로 목불을 만들었고 ▶이때 목불에서 나온 송진이 복장유물로 들어간 직지 본문에 번졌을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직지 표지와 간기는 후대 별도로 만들어져 첨부된 것이기 때문에 송진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직지가 목불 복장유물로 사용된 근거는 영광 불갑사가 소장하고 있는 취암사 직지 목판본과 송노암 필사본(1613·광해군 5년)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불갑사는 지난 1998년 경내 명부전 사천왕상에서 취암사본 직지 목판본(1378년 간행)이 복장유물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이 목판본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 233호로 지정됐다.
송노암 직지 필사본은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대구시내 모 고서점에서 발견한 것으로, 사찰 복장유물로 있던 것이 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황 학예사는 이에대해 "원본, 목판본 등 여러 판형의 직지는 처음에는 스님 학습서로 사용되다 불사 때 복장유물로 들어갔고,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면 대거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며 "탑에도 복장유물이 보이나 실내 불상이 보존력이 큰 만큼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직지 원본에는 붉은색 구결이 남아 있어 직지가 줄곧 스님들 학습서로 사용됐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이같은 견해는 직지는 1377년(간행연도) 이후 건립된 사찰, 그리고 그들 사찰중 불상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 복장유물이란
복장(腹贓)은 처음 탑 안에 부처님의 사리를 넣어 신앙의 대상으로 하면서 발전했다. 그 후 탑뿐만 아니라 불상의 배 안에도 사리, 경전 등을 봉안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로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사리함과 함께 나온 국보 제126호인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이 가장 유명하다. 복장은 '은밀한 곳에 깊이 간직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직지의 전존 경위 | ||
시 기 | 내 용 | 비 고 |
1377년 7월 |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 | 상·하권으로 추정 |
14세기후 - 15세기초 | 금속활자본 불복장 | 상·하권 분책 |
16세기말 - 17세기초 | 개금불사시 출현되어 유전 | |
1613년 여름 | 송로엄이 필사(1장-39장) | |
17세기 중반 | 필사본의 불복장 | |
18세기 - 19세기 | 금속활자본 원본의 개장(2장-39장) | 1장이 탈락(표지 장정) |
1896년 - 1900년 | 금속활자본 수집(꼴랭 드 뿔랑시) | |
1900년 |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전시 | |
1901년 | 모리스 꾸랑의 『한국서지』에 게재 | n 3738 |
1911년 | 꼴랭 드 뿔랑시가 드루오호텔 경매앙리 베베르 180프랑에 구입 | 경매번호 : 711(파리시립 고문서실) |
1950년 | 앙리 베베르 BNF에 기증 | 기증번호 : 9832 도서번호 : 한국 109 |
1972년 | 제1회 "세계 책의 해" 전시, BNF | 1972년 5월 17일 - 10월 31일 |
1973년 | 문화재관리국 영인본(흑백) 제작제29회 동양학 국제 학술대회 "동양의 보물" 전시, BNF | 박병선으로부터 구입 1973년 6월 14일 - 10월 31일 |
1985년 | 흥덕사 터 발굴(청주대학교 박물관)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 |
1987년 | 문화재관리국 영인본(칼라) 제작 | BNF 필름 제공 |
1990년대 | 송로엄의 필사본 발견 | 대구지역 |
2001년 | UNESCO Memory of the World 등재 | |
2003년 | Digital Jikji 홈페이지 구축(청주고인쇄박물관) | BNF 디지털 촬영 CD 제공 |
2004년 | UNESCO 'Jikji Prize' 제정 |
조혁연 기자
chohy@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