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성룡 / 법무법인 '청풍로펌' 변호사
문민정부 시대인 1993년, 자금흐름의 왜곡과 광범위한 조세포탈을 차단해 조세정의(租稅正義)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기치 아래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발령,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금융실명제(金融實名制)란 말그대로 금융기관과 거래를 함에 있어 가명이나 차명이 아닌 본인의 실지명의, 즉 실명으로 거래해야 하는 제도다.

그동안 금융실명제도의 시행으로 조세포탈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가명계좌, 차명계좌나 정당치 못한 회사의 비자금 등 이른바 '검은 돈'의 존재가 감소함으로써 금융거래의 투명성 제고와 경제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이하 '실명'이라 한다)에 의해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도, 이를 위반한 경우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부과에 그치도록 규정함으로써 여전히 가명계좌나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정상적 금융거래가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차명계좌를 이용한 금융거래의 경우 그동안 대법원은 '차명계좌의 경우 원칙적으로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출연자(실제 예금을 한 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출연자를 예금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차명계좌를 통한 금융거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온 꼴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금융실명거래의 법적·제도적 취지가 퇴색함은 물론이다.

차명계좌나 가명계좌를 통한 비정상적인 금융거래를 원초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명계좌의 예금주를 출연자가 아닌 예금명의자로 보아 예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자를 예금명의자로 한정, 차명계좌를 통한 금융거래시 출연자가 예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대법원 판례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은 '본인인 예금명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절차가 이루어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하여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예금주)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사이에서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와 예금계약을 체결해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되어야 하며,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작성된 예금계약서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매우 엄격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기존의 판례를 모두 변경하였다.

앞으로 차명계좌를 통해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돈을 예금한 출연자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졌으며, 이로 인해 차명계좌나 가명계좌를 통한 금융거래가 사라지고 실명을 통한 금융거래가 정착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변경된 대법원 판례는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이를 계기로 조세정의를 통한 경제정의와 정당한 부의 축적을 통한 건전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염원해본다.

/ r2846425@nate.com 류성룡 / 법무법인 '청풍로펌' 변호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