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 법무법인 '청풍로펌' 변호사
뇌물죄로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절벽에서 몸을 던져 서거, 지난달 29일 국민장 영결식이 서울 경복궁에서 거행됐다. 전직 대통령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는 차분히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점들을 진단,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모을 때이다. 그중 하나가 그동안 수사관행으로 굳어져온 이른바 공개수사 방식이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 유명 연예인에 대한 범죄, 나아가 어린이 유괴나 성범죄, 연쇄살인을 포함한 흉악 범죄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법원에 기소전 언론사 기자들을 모아놓고 수사진행과정을 브리핑하거나, 언론을 통해 피의자를 공개수배하는 수사방식이다.

이같은 공개수사방식은 범인의 조속한 검거와 범죄의 재발 방지라는 측면에서 수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언론의 자유보장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이번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물론 그동안의 전직 대통령들 및 가족, 정권의 핵심 실세들에 대한 수사과정은 어김없이 공개수사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전직 대통령들의 부정한 축재(蓄財)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 정권하수인들과 대통령 가족들의 파렴치한 범죄행각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충격과 허탈감을 느끼면서 이들을 비난하는 한편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에 대해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성역없는 수사를 통한 사법처리를 응원했다. 이는 국민들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순기능과 전 정권에 대한 욕구불만 해소라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할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 및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용한 특종 경쟁을 벌이는 언론들이 흥미위주의 선정적 보도를 하는 등 피의사실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수사선상에 오른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법원 판결도 전에 이미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찍는 등 회복할 수 없는 고통과 자존감 상실을 가져오며, 자칫 공개수사의 한계를 넘을 경우 피의사실공표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자살하는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으며, 그 때마다 공개수사방식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검토 없이 무관심하게 지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그동안 문제의식 없이 관행처럼 혹은 장점과 순기능만을 우선시하면서 시행돼온 공개수사방식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향후 고위공직자나 유명인들에 대한 보다 선진 방식의 수사방식 도입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최근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수사공보제도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켜 기존의 검찰브리핑과 언론보도의 관행을 점검하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수사공보 선진화방안을 수립하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는 환영할 일이다. 아울러 언론기관들은 시청율과 구독율에 집착해 고위공직자나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피의사실을 다룸에 있어 마치 무협소설을 방불케 하는 재미위주의 선정적 보도에 치우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개수사방식은 수사의 효율성과 범죄의 재발방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정당성이 있는 반면, 피의자의 인권침해라는 폐해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그 정당성을 배가시키면서도 피의자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지혜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류성룡 / 법무법인 '청풍로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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