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무엇이 문제인가 (하) 요양시설 르포

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한 재가장기요양기관.

거실 한켠에 걸린 벽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켰다. 거실에는 10여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TV를 시청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한가한 오후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유난히 마른 몸과 굽은 허리의 김정림(가명·83) 할머니가 옆에 앉은 동료에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를 건낸다.

"머리맡에 놓아 둔 땅문서가 없어. 땅문서 없어지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누."
김 할머니의 되풀이되는 이야기가 귀찮은지 곁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슬쩍 자리를 피했다.
김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김 할머니의 기억은 50여 년 전 경기도의 한 시골에 살던 시절에 멈춰 있다.

"아들 녀석이 어제 군에서 제대를 하고 요 건너에 사는데 아들집에 가야 해"
혼자서는 거동은 커녕 대소변조차 해결을 못하는 김 할머니가 이곳에 들어 온 것은 지난 6월 3일. 이곳 시설에 들어오기 전까지 김 할머니는 1년 넘게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아들집에서 방치돼 있었다.

김 할머니의 고달픈 삶은 큰 사업을 운영 하던 큰 아들의 사업체 부도와 함께 시작됐다.
30억원이 넘는 부도로 인해 집안 형편은 급격히 몰락했고 그 충격으로 할머니를 지극히 수발하던 며느리마저 심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김 할머니의 힘겨운 노년은 가혹했다. 텅 빈 집안에서 식사 해결은 물론 돌보는 이 하나 없이 아픈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다행이 이러한 김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요양시설 원장이 할머니를 이곳으로 모시고와 돌보고 있다.

현재 김 할머니는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지 못한 채 긴급생활지원자금을 6개월 한시적으로 적용 받아 장기요양급여 서비스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시설의 도움으로 식대는 내지 않고 본인부담금 15%(20여만 원)만 내고 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에는 김 할머니는 고달프고 힘겨웠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형편이다.

김 할머니처럼 고령화 사회의 진입과 더불어 최근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신빈곤층이 늘어나며 '돈 없는 복지 수요자'들이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 엄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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