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한복판' 행복도시 건설현장을 가다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덤프트럭, 타워크레인 사이로 듬성듬성 배치되어 흙파기 공사가 한창인 포크레인들. 나무와 잡초를 걷어내고 깊은 속살을 드러낸 드넓은 황토에는 여전히 밑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도시의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원안 수정, 연기, 지연, 축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앞으로 밖에 나아갈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이 지금은 자취를 감춘 연기군 남면 종촌리의 모습 만큼이나 쓸쓸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안내를 받아 세종시 건설 현장을 찾은 23일. 행복도시 세종의 현장 모습은 법과 정책의 추진 속도 만큼이나 지리멸렬했다. 세종시의 위태로움은 후광을 기대해 앞다퉈 건설됐던 주변지역 조치원의 아파트 단지 풍경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 흔들리는 세종시 건설현장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원안 수정발언과 관련해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세종시 건설현장은 황량한 벌판에 흙더미만 파헤쳐진 채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 김용수
 


◆후광 사라진 주변지역=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진입해 공주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면 세종시의 후광을 기대해 건립된 아파트 단지를 마주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조치원 자이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완공된 아파트 단지는 적막하기만 하다. 허허벌판에 있어야할 잡초들이 아파트 단지 인근에 웃자라 있고 군데 군데 빈집들도 눈에 띈다.

조치원 자이는 1천400세대를 지었지만 분양률은 절반에 그쳤고, 이마저도 절반은 해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분양 당시30평대 500만원, 40평대 600만원, 50평대 700만원에 분양했던 것이 미입주로 인해 1천세대는 임대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종시를 겨냥해 지어진 조치원의 아파트 단지들은 한 마디로 '세종시로 인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대림 e편한세상은 1천세대 가까운 세대의 골조공사를 완성하고도 분양이 안돼 공사를 중단했으며, 500여세대를 지은 삼호의 분양률 역시 절반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8세대만 분양돼 980세대가 몇년째 방치되고 있는 대림 e편한세상은 대표적 미분양 실패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파트를 준공하고도 분양에 주춤할 수 밖에 없는 건설사들의 난맥상은 세종시의 시범생활권 참여 기업들에게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흔들리는 기업, 취소되는 계약= 주변지역의 아파트 동향을 파악한 행복도시의 시범생활권내 12개 기업들에서는 계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쌍용과 풍성이 계약을 취소한 상태이며 최근에는 삼성의 계약 취소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은 현재 계룡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부청사까지 짓고 있기 때문에 삼성에 대한 정보는 현장 민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행복도시건설청은 "삼성의 해약설은 사실이 아니다"며 "조만간 중도금을 납부할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2030년까지 투자하기로 한 예산은 모두 22조 5천억원(정부 8조5천억원, 토지공사 14조원). 이 가운데 올해 9월까지 집행된 예산은 총사업비의 24%에 달하는 5조4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7년 7월 도시건설 사업에 착공한 이래 부지조성과 광역도로, 정부청사, 첫마을 등 건설사업이 추진중에 있으며 22개 생활권 가운데 4개 생활권의 부지조성과 공동구, 내부 순환도로 등 주요기반시설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주택공사가 7천세대를 분양할 예정인 첫마을은 분양이 지연되고 있고, 8조5천억원이 투입되는 시범생활권의 건설업체들에서는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첫마을 연기와 원주민 대책=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원안 수정 발언에서 촉발된 건설업체들의 이탈설로 당초 2010년 7월 1일 출범할 예정이었던 세종시의 출범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2010년 하반기 7천세대가 준공될 예정인 첫마을은 문화재 발굴로 1년이 지연되면서 내년 입주가 불가능한 상태. 주택공사는 부동산 동향을 살펴본 후 분양 시기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충남도가 세종시 예정지역 원주민들에게 제시했던 세종임대아파트 건립 사업도 2010년 하반기 준공이 목표이지만 충남도와 공주시의 불협화음으로 정상 추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모씨(55)는 "토지공사에서 분양하는 이주자 택지 분양금액이 한 평당 160만원에 달해 원주민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며 "고향을 내주고 돈이 없어 내쫒기는 신세가 된 상태로 정부는 이주민들에게 분양대금을 낮춰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축소·지연은 안될 말= 세종시 인근 주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임모씨(50)는 "세종시 관할 구역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행정적으로 건축행위 및 모든 규제 대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일관된 정부 정책이 없어 행정도시 구역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불만이 폭발 직전에 와 있다"고 말했다.

홍석하 행정도시 무산저지 비대위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가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내세워 인사청문회에서 행정도시의 자족기능을 운운하며 본말조차 전도하고 있다"며 "정부에서는 자족기능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으로 사실 자족기능 부분은 실시 계획 등에서 연구가 끝난 상황으로 새로운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성남고의 한 교사는 "행정도시 건설로 인해 학생들이 외지로 대부분 나가 교실이 텅비어 있는 상태"라며 "그나마 청주·대전 등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통학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데 지장이 많다"며 세종시의 조속한 추진을 당부했다. / 홍종윤·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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