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시장서 만난 사람들

어스름을 뚫고 제법 쌀쌀해진 새벽공기를 맞으며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거리가 없어 헛걸음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일거리가 있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선 이웃들이다. 열흘째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60대 할아버지, 두 아들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몸으로 일감을 구하러 나온 40대 가장, 벌이가 없어 추석 맞을 일이 걱정이라는 50대 아주머니 등 사연은 다양했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삶의 연속이지만 '내일은 달라지겠지'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새벽 인력시장 일용직 근로자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


속타는 60대 할아버지 담배만 뻐끔
한달 공친 40대 가장 "설마 오늘은"
남자들 틈새서 몇몇 여성도 서성여


27일 새벽 5시 50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청주시인력관리센터.

30~40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찬 공기 가득한 허공을 향해 연신 담배연기를 내 뿜고 있는 신모(68·석교동)씨도 새벽 5시에 이곳에 나왔다.

신축 공사현장에 열흘 전 청소일을 나간 것이 마지막 일거리였다. 오늘도 허탕을 치는 것이 아닐까 초초하기만하다.

"담배 피는걸 뭐 하려고 물어봐. 속 타니까 담배 피는 거지. 매일 허탕만 치고 가는데 속이 안 탈수가 있나. 추석은 코 밑인데…"

▲ 27일 새벽 5시 50분 청주시인력관리센터 앞에는 일거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엄기찬
20여년 넘게 청원군 문의면에서 소 장사를 했다는 신 씨는 2년 전부터 하던 일이 여의치 않아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마저도 일거리가 없어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 청주시노인병원 건설현장에서 한 달 동안 일하며 벌어 놓은 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에 사는 김모(49)씨는 다가 올 추석이 걱정이다. 한 달이 넘도록 일다운 일을 나가지 못해 두 아들과 추석은 커녕 생활비마저 모자란 형편이다.

"일이야 시켜주면 꼼꼼하게 잘하지. 근데 귀가 잘 안 들려서 사람들이 안 쓸려고 그래. 아침 7시까지 기다려보고 없으면 막걸리나 한잔 먹고 들어가야지 뭐."

대구가 고향이라는 김 씨는 지금 형편으로는 고향에 내려 갈 엄두도 못내고 있다.

30~40여명 중에 7명 남짓 여성 근로자들이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다는 최모(54·여)씨는 남자들 틈에 끼어 일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 아직은 편하지 않다.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은 최 씨는 다른 식당일을 구하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다. 경기가 어려운 탓에 일손 구하는 식당이 없는 탓이다.

추석도 다가오는데 마냥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집 근처 인력센터에 나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주시인력관리센터를 찾는 사람은 하루 평균 약 80여명. 이들 중 일거리를 얻어 하루벌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사람들은 많아야 15명 정도다.

얼마 전까지 200여명이 이곳을 찾았지만 일거리 자체가 없어 이제는 찾는 사람의 발길도 줄고 있다.

아침 7시가 넘어서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인력관리센터 인근 거리를 메우던 사람들은 아쉬움과 함께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들은 내일 또 다시 이 길을 찾을 것이다. / 엄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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