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다보면 길은 뒤로 만들어 진다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선 추운 날, 신영복 교수는 "우리 더불어 겨울나무, 숲이 되자"고 했다.

지난주 13일 저녁 7시 청주교육대학에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자 소주 이름 '처음처럼'을 붓글씨로 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역 시민·학생들을 만났다. '별책부록'으로 불리길 마다않는 성공회대 교수 3명으로 구성된 '더 숲' 트리오도 함께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했다.

이날 강연은 신 교수가 그림을 그리며 강의를 하고, 노래공연 후 청중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편한 방식으로 박종관 서원대 겸임교수가 진행했다.

신 교수는 칠판에 3가지 그림을 그렸다. 앙상한 나무가지 끝에 달린 빠알간 감 하나, 사람의 머리와 하트·발, 나무 세그루가 모인 숲을 그렸다. 그리고 세상과 우리를 이야기 했다.

그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서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겨울 초입인 지금 나무 하나가 있다. 그 가지 끝엔 과실 하나-씨과실-가 달려있다. 모든 잎이 떨어져야만 뼈대와 가지가 들어나듯, 우린 우리의 잎을 떨궈야 우리를 볼 수 있다. 거품, 환상을 깨트려야 식량, 에너지, 문화로 부터 우리의 자립을 알 수 있다. 떨어진 잎은 뿌리를 덮어 거름이 된다. 뿌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린 신자유주의 속에 사람을 거름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우리의 머리란 무엇인가. 우리가 닫혀있는 근대적 문맥은 무엇인가. 우린 정보의 양·질에 따라 이성과 합리성을 근거로 타자화, 대상화, 분석화에 갇혀 있다. 자기 세계를 넓히기 위해선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긴 여정을 가야한다. 발은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란 자기 중심식·관념적 사고를 탈피하는 것이다. 지식이 진실을 가리고, 무식이 날카로운 통찰력이 될 수 있다. 창백한 책속에서 배운 관념성을 바꾸고자 신 교수는 감옥에서 결심했다고 한다. 변화는 공감과 이해, 공존의 완성이다.

우리 사회의 운동도 자기 생각을 바꿔야 한다. 촛불집회에 가보니 웬 깃발이 그렇게 많더라. 촛불 공간을 자기 조직 강화에 쓰고있다는 인상이 들었다고 한다. 웹 2.0 세대는 스스로 하나하나가 서버다. 근대적 영토주의에 매몰되어선 안된다. 변화와 새로운 창조적 발상이 중요하다.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 압도적인 주류, 중심부는 복속의 논리로 변화가 어렵다. 소수자, 주변부, 마이너리티가 창조적 영역이다. 사회가 구조화되어있는 한 사회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변부인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선 컴플렉스를 버리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도로가 자본논리라면 길은 인간적 논리다. 먼 길을 가기위해선 즐겨야 한다. 함께 걷다보면 길은 뒤로 만들어 진다.

신 교수는 네덜란드 동화를 소개했다.

아이와 산책중인 아버지가 길가에 핀 버섯을 가리키며 독버섯이라고 말했다. 독버섯은 자신이 독버섯이라는 사실이 서글펐다. 옆에 있던 버섯이 "너는 그냥 버섯이지 독버섯이 아니"라고 위로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버섯은 말했다. "버섯이 버섯 말을 들어야지 왜 사람말을 믿는냐"고.

신 교수는 자유-자기의 이유-를 설명하며 사람의 논리로 버섯을 평가해서 안된다고 말했다. 자유, 자기철학을 가진 나무 셋이 모여 숲을 만들고, 그 숲은 변화한다. 바로 그 숲이 지역공동체인 것이다.

이어진 질문에서 신 교수는 TV 모니터로부터의 '꿈'이 아닌 자유로부터의 '깸'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제자인 동시에 스승이라고도 말했다. 인생은 고민의 배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박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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