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용 현/법무법인 '청남' 대표변호사

19세기말 유럽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회민주당 등 진보정당의 등장과 일반 시민에 대한 투표권의 확대는 보수세력에게는 엄습하는 불안함 자체였고, 진보세력에게는 결정론적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상층 부르조아나 귀족들만 갖던 투표권이 일반 시민, 노동자, 빈민, 여성으로 확장되면 자연히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승리하여 집권하게 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수세력이 투표권 확대에 극렬히 반대하여 왔던 것이 20세기 초반의 역사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경험적으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당연한 노동자 정당의 집권은 예상과 달리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보수세력이 더욱 공고화되고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집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 결정론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당연한 추론이 맞지 않았을까?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분석을 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어놓았지만, 결론은 일반 시민들이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귀착되었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들이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계급정당의 탈이념적인 대중정당화, 진보 정당의 보수화, 언론 변수나 그 중요성의 불고려 등을 들기도 하고, 보다 근원적으로 계급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의 진보정당의 경험도 그에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하다. 노동자, 농민, 일반 서민 등 절대 다수인 약자를 대표하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거나 후보를 양보한 지역이 더 많을 정도였고, 득표율도 이전보다 더 추락하였다. 10년간의 정치과정에서 진보세력은 점점 더 왜소화되어 감에도 이들은 그에 대한 해답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론조사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

실제 우리는 지난 20여년의 정치과정에서 보수와 반대세력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과 같은 선거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우리의 예상이 항상 적중한 것이 2가지 있다. 아니 여론조사의 필요성조차 없는 것이 있다.

하나는 영, 호남에서의 지역투표경향이다. 그럼 또 하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한명숙 전 총리가 맞붙은 서울시장 선거는 예상외로 박빙의 승부를 보이다가 오 후보가 겨우 2만6천여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결과의 왜곡이 극에 달한다. 오 후보는 서울의 25곳 지역구중 17개 지역구에서 패배하고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에서 한 후보보다 12만여표를 더 얻어 승리를 가로챈 것이다. 오세훈 서울 시장 = 강남 시장이라는 말이 성립되게 되었다.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의 선거에서도 강남은 항상 일관된 투표성향을 보여왔다. 강남으로 지칭되는 우리 사회의 최고의 특권층은 항상 자신들의 이득을 철저히 계산하는 계급투표를 하여 온 것이다.

강남 시민은 우리 사회의 1% 특권층이다. 그들은 권력적으로나 재산으로나 서울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수로는 단 1%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온갖 불법, 탈법으로 또는 이상한 법의 혜택으로 대한민국의 절반이 넘는 권력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이번에는 12만의 몰표라는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마법사처럼 강남구청장을 서울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일반 시민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정당함의 100배가 넘는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것처럼, 본인들의 힘만으로 강남 구청장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어 낸 강남의 귀족들이고 마법사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하는 현명한 유권자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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