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나는 산행을 자주 즐긴다. 특히 봄과 여름에 혼자 간다. 스틱을 반드시 가져간다. 정규 산행로를 한 번은 꼭 벗어나 한 시간여를 옷을 벗고 쉰다. 가급적이면 침엽수인 편백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산을 자주 간다.

삼림욕의 한자어는 '森林浴'이다. 사전적 의미는 병 치료나 건강을 위해서 숲에서 산책을 하거나 온몸을 드러내고 숲의 기운을 쐬는 일이다. 이 숲 기운은 무엇일까? '浴'에서 보듯이 물과 관련이 있을듯하지만 물이 아닌 식물에서만 내뿜는 특이한 방향물질이다.

1943년 러시아 태생 미국 세균학자 왁스만이 처음 이름붙인 피톤치드(Phytoncide)다. 나무 나 풀 등 식물에서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이다. 식물이 병원균이나 해충 그리고 곰팡이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바람이나 동물 등에 의해 상처를 받을 경우 즉각 분비해 생명을 지키는 생체방어물질이다.

이 피톤치드는 살균과 살충 등의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톤치드는 식물 스스로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전혀 없는 천연 치료제다. 벌초할 때 나 벌목장에 갔을 때 평소보다 더욱 강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피톤치드에 들어있는 '테르펜(Terpene)'이 똑 쏘는 듯한 냄새를 내기 때문이다.

이 테르펜 성분은 동물들에게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가 이 테르펜을 마시면 살균은 물론 강장과 거담 그리고 혈압강하 효과가 있다.

충북대 신원섭 교수는 한 실험에서 '테르펜이 들어있는 피톤치드를 마신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감정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는 결과를 얻었다. 테르펜은 피부에 기생하는 캔디다(Candida)균도 죽여 가려움증을 치료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이 테르펜은 몸속으로 들어가 병원균과 나쁜 곰팡이를 없애는 등 각종 질병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암이나 결핵 등의 환자들이 깊은 숲을 찾고 있다.

조선시대 언제부턴가 무더운 여름이면 사대부들 사이에서 해괴망측한 풍습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즐풍(櫛風)과 거풍(擧風). 햇볕이 내리쬐고 동남풍이 부는 날 사대부들은 산으로 올라가 상투를 풀어 빗질을 하며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었다. 사시사철 머리카락을 동여매 악취가 풍길 테이고 행여 머릿니도 있을 테이니 바람에 날려 보내고 햇볕에 태워 죽이기 위해서다. 이것이 즐풍이다.

사대부들은 옷을 모두 벗어 하체를 드러내놓고 바람과 햇볕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온몸을 드러내놓고 목욕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형편에 사대부들의 샅(사타구니)은 그리 청결하지 못했다. 남몰래 산에 올라 옷을 벗고 바람과 햇볕을 이용해 샅을 청결하게 한 것이 바로 거풍이다.

당시 사대부들이 아무리 무더워도 옷고름을 함부로 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할 때 왜 이런 풍습이 행해졌을까? 숲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대부들의 풍습에는 바로 피톤치드가 숨어 있었다. 당시 사대부들의 파격적인 행동은 정말 과학적 바탕을 둔 삶의 지혜였다. 물론 무엇인지 몰랐지만 말이다.

내가 혼자 산에 가는 이유는 사대부들처럼 남몰래 나의 샅에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기 위해서다. 즉 피톤치드를 피부에 닿게 하기 위해서다. 숲속에서 피톤치드를 마실 수는 있으나 옷에 가린 은밀한 신체 일부는 피톤치드를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틱은 고됨을 분산하기 위함도 있지만 마구 휘둘러 풀이나 나무를 상처내기 위함이다. 상처가 나야 더 많은 피톤치드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피톤치드를 2배 이상 발산하고 침엽수 가운데 편백나무가 가장 많이 내뿜는다.

올 여름이 가기 전 피톤치드의 보고인 전라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을 혼자 꼭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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