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 법무법인 '청남' 대표변호사

검사시절에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대통령의 이발사의 눈에 비친 군사정권시절의 풍경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인데, 그중에 간첩을 잡는다며 어린 아이까지 정보기관으로 끌고 가 전기 고문하는 장면에서, 코믹하게 그려진 기관원이 어린 아이에게 자신도 업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문을 한다는 취지로 "(전기고문을) 살살할테니 아프면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그 장면이 검사시절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 양천경찰서의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에 대하여 가혹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건이 이상한 쪽으로 번졌다.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서울경찰청장을 거론하면서, 이와 같은 가혹행위는 서울경찰청장의 실적주의 강요 때문이었으니 책임을 지라고 일갈한 것이다.

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구타하고, 피의자에게 욕설을 하고, 자백 심지어 허위의 자백까지 강요하여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내는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자백강요 등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강북경찰서장의 말대로 대부분 상부의 실적 강요,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실적주의, 실적에 대한 압박, 그에 따른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나 무리한 수사는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년전에는 서울중앙지검이 홍 모 검사가 부하 수사관들의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고, 서울동부지검의 백 모 검사는 허위자백을 강요하였다고 하여 인사조치된 사실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것은 일부 비정상적인 수사관들만의 문제인가?

검사생활을 청산하며 그간 모아두었던 서적과 자료를 정리하는데, 10년 가까이 꼬박 모아두었던 업무일지라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검사들은 통상 1주일에 1회 정도 부장검사 주재하에 검사회의를 하는데, 그때 하달되는 지시사항이 매번 "미제척결, 무고인지"(이는 수사중인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처분하고, 고소사건중에 허위로 고소한 고소인을 무고죄로 입건하라는 취지임)로 적혀있었다. 이것이 홍, 백 검사와 같은 특수나 강력부 검사를 제외한 일반 형사부 검사의 기초적인 실적이었던 셈이다.

10년 가까이 최소 1주일에 1회씩 똑같은 말로 실적에 관한 지시를 받았고, 검사생활을 청산하면서 남는 것이 이 말이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고, 이 실적이라는 것 때문에 검사 생활 중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기억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나 새삼 되돌아 보게 된다.

인사 평정, 업무의 성패의 판단의 수단으로 실적, 성과, 성적이라는 기준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적이나 성과를 절대적 기준으로 인사평정을 하고, 업무를 수행한다면,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관료주의의 병폐가 심각한 수사분야에 실적지상주의가 결합된다면, "사람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수사를 위하여 사람이 존재"하는 심지어 "수사를 위하여 사람을 처리"하는 역현상이 일어나고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게 된다. 상부는 상부대로, 하부는 하부대로 실적만으로 평가를 받게 되고, 하부는 이중으로 실적 압박을 받게 되니, 조직의 톱니바퀴 속에서 실적을 위해서 작은 불법이나 절차적 정당성을 위반한 것에는 상부나 수사관 스스로도 눈감게 되고,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적법절차에 대한 무감각은 강화되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가혹행위나 자백강요까지 서슴치 않게 되고, 심지어 허위 진술로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죄 없는 시민을 구속하게 된다.

성적지상주의가 학교를 피폐화시키고, 학부모와 학생들을 망국의 사교육으로 옭아맨 것처럼, 수사조직에서 실적지상주의는 조직 자체를 망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양천경찰서 경찰관들, 홍·백 검사 사건에서처럼 피의자 나아가 시민을 구타·고문하고 자백과 허위진술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다. 양이나 돈이 사람을 잡아먹었듯이, 수사조직의 실적주의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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