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나는 아내와 가끔 구룡산을 찾는다. 구룡산은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삼아 가볍게 갈 수 있어 좋다. 수만 가지 지식보다 한 가지 지혜가 소중하다는 걸 터득한 선인은 산책하며 사유하는 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구룡산을 찾는 것은 산행을 하다보면 무겁던 몸과 마음이 청명하게 되는 것도 한 몫 한다.

며칠 전 아내와 구룡산을 오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 박상우는 인생에 필요한 덕목으로 책 읽기, 혼자 걷기, 남의 말 경청하기, 분명하게 말하기를 꼽는다. 아내와 나는 나이 들어가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을 들었다.

오묘한 삶의 이치를 한 두 개의 덕목으로 설명하고 정리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나이 들어가며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어렵다. 나이 들어 어른이 될수록 나만 옳다는 논리의 모순에 빠지기 쉽다. "내가 해보니까 말이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워 말하기에 익숙하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상대방을 훈계하려 든다. 지금까지 살아온 연륜과 경험을 잣대로 모든 현상을 재단하려 한다. 나이가 들수록 배타적인 사고방식은 추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을 줄 모르는 어른에게는 오만함만 덕지덕지 묻어 있다. 나이 들면서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고정관념에 빠지게 되면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된다. 삶은 끊임없는 관계 맺기의 과정인데 그런 어른은 세상살이가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살면서 두루 포용해주는 어른이 그립다. 나이가 들어가며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수용지향성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의 처세에는 품격의 멋이 묻어난다.

삶의 화두를 마음속에 새기며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데 오십대 후반의 아줌마가 화단에 있는 개 복숭아 열매를 마구 딴다. 등산객들이 눈총을 주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미안한 양심도 실종된 표정이다. 등산객들의 보는 즐거움을 빼앗는 어른의 무례함이 황당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을 때 뒤뜰에 있는 앵두를 따던 관광객이 떠올라 씁쓸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어른의 부끄러운 행위는 닮지 말아야지 마음의 끈을 묶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애완견을 안고 왔다. 등산객을 위해 설치한 식수대에 애완견을 올려놓더니 물 먹기를 강요한다. 애완견의 목마름이 안쓰럽다면 손바닥에 물을 담아 먹이면 될 텐데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식수대에 애완견을 올려놓는 무례함에 마음이 상했다.

물을 먹지 않는 애완견에게 몇 차례 더 강요하더니 말을 듣지 않자 화를 내며 애완견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방금 전 아저씨의 다정다감한 마음씨와 내동댕이치는 행위의 상반성에 깜짝 놀랐다. 아저씨가 조울증에 걸렸다면 애완견은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다. 어른답지 못한 행위들로 마음이 심란했다. 나이 들어가며 더욱 단단하게 지켜야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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