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뜨락-정종병 時兆社;敎役

아내는 만 55세이다. 가르치기를 좋아해서 학교에도 있었고, 사십 중반에 장애우를 봉사하고 싶다고 늦깎이 공부로 복지학과도 졸업했다. 그러나 자신이 장애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년전 갑자기 발끝이 저려 오는 것으로 시작한 병은 가슴과 손를 거쳐 이제 머리까지 병변이 퍼졌다.

처음에는 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수 없다가, 손에 힘이 없어 겨우 밥 먹는 것만 자신이 할 수 있었고, 이제는 머리에 균이 퍼져서 세포 하나 하나씩 죽어가고 있다.

3개월 전 병원에 찾아오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단순히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했다. 오직 부모, 형제, 자녀, 남편은 똑똑히 기억하고 간단한 대화는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언제 보아도 살가운 아들이 와서 "엄마! 엄마! 엄마!…" 불러 보아도 무표정한 얼굴에 입을 굳게 닫고 말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의 진단병명은 '뇌와 중추신경계통의 악성신생물'이라는 길고도 처음 듣는 생소한 병명이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신경과 세포가 점점 죽어가고 있으니 보는 이들은 말로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지난 날을 기억해 본다.

아무리 못쓸 병일지라도 가족을 알아보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 만이라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병 간호가 아무리 힘들지라도 이런 저런 일을 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게 한다.걷지 못해서 업고 안고 평생 다닐지라도 그 병고의 무게는, 지금의 무게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찾아오는 병문안자에게 그저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떠 있어도 아무런 표정없이 있는 모습은 사람의 병이 이렇게까지 신체와 정신이 망가뜨릴 수 있는가 하는 아픔에 마음이 저러옵니다. 또 불원간 이제 더 이상 가족의 이름으로 불러졌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생각되니 그 아픔과 고통, 후회와 자괴의 마음이 짓누른다.

사람은 한평생 '자아사랑' 빠져 나 외의 가족을 포함해서 타인에 대해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우리 속에 내재하는 절대자의 사랑으로 자신은 온전히 죽고 그 안에 절대자의 사랑이 살지 않는다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는 불가능한 명제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한 후회가 지난 30년간의 저의 삶임을 고백한다.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사형선고를 받고 이 세상에 나온다.

세상에 올 때에는 순서대로 왔지만 세상을 갈 때는 그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고든 리빙스턴'이 쓴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too soon old too late smart)'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부제로 '너무 늦기 전에 지금 알아야 할 인생의 진실 30가지' 가 달려있다.

지금, 여기에서 영혼을 깨우는 하늘의 울림이 되는 소리를 한 해의 반환점에서 선 애늙은이는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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